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년 중 자살이 가장 빈번한 시기는 4, 5월이다. 아마 가을철에 많이 생기는 우울증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이 시기에 결국 자살 시도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자살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2년 동안 연속 1위다. 보건당국이 자살자 수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대책을 마련했지만 결국 자살예방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세계 보건의 날 행사 주제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3억 명 이상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이 행사에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울증 환자를 조기 발견해서 치료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우울증 환자를 조기에 찾아 도움을 주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부터 동료들과 엽서를 주고받고 서로 관심과 애정을 쏟는 ‘괜찮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캠페인 호응이 좋아 전 부처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괜찮니 캠페인’을 확대할 계획이다. 캠페인을 통해 우울증 환자를 일찍 찾아내고 전문가가 개입해 조기에 치료해서 자살을 막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좋을 게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우울증 환자의 조기 발견이 쉽지가 않다. 더구나 우울증 환자의 10%만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다. 우울증은 흔한 질환이지만 유독 한국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다.
따라서 ‘괜찮니 캠페인’에서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는 내용을 함께 진행하면 어떨까. 우선 마음이 우울할 때는 마음의 비타민인 우울증 약을 조기에 복용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해 보자. WHO 정신건강 소장인 시카 색시나 박사는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의사를 찾아가라. 우울증 환자의 3명 중 2명은 우울증 치료제 복용으로 4∼6주간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좋아진다. 우울증은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경우 1990년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7명 가까이 됐던 게 우울증 약(SSRI)이 나오면서 2000년대엔 11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한국은 감기 환자는 쉽게 병원을 찾는 반면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큰 부담 때문이다.
부담을 없애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효과 좋은 우울증 약(SSRI 계통)은 오래 복용해도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 안전성이 확보된 약이다. 따라서 가벼운 우울증은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등 일반 의원에서 충분히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현재 이 약은 비정신건강의학과로 가면 보험 혜택이 60일로 제한돼 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정이다.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의 질환은 일종의 ‘감정병’이기 때문에 조현병이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처럼 심각한 정신질환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에서 병을 분류하는 질병코드를 보면 우울증이나 조현병은 모두 똑같은 F코드다. 감정병은 F코드에 포함되지 않도록 새로운 코드를 부여해야 한다. 우울증 검진에 필요한 수가도 현실화해서 많은 의사가 우울증 질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편견을 만드는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OECD 자살률 13년 연속 1위의 불명예를 벗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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