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부산 해운대구의 7중 차량 추돌사고로 사상자가 26명이나 발생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가해 차량 운전자가 뇌전증을 앓았던 사실이 드러나 더욱 주목을 받았죠. 경찰수사 결과 운전자의 과실이 질환과 무관하다고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뇌전증 환자를 격리조치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이 커졌습니다.
뇌전증은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발작의 고통과 함께 사회적 편견까지 맞서야 하는 힘겨운 질환입니다. 과거 뇌전증을 뜻하던 ‘간질’이라는 명칭도 용어 자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병명에 대한 편견 때문에 2014년에 명칭이 변경됐습니다.
뇌전증은 대뇌에서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 신경세포들의 비정상적 흥분이나 잘못된 신호 방출로 발작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생 원인은 선천성 질환, 뇌의 염증, 뇌종양,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 등 워낙 다양합니다. 발작 외에 신체 강직, 구토,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는 행위, 인지반응이 느려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원인과 증상이 다양해 과거엔 치료가 어렵고 완치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확한 초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 생활이 가능합니다. 특히 환자 10명 중 7, 8명은 약으로 증세가 호전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개발된 뇌전증 치료제는 총 3개의 세대로 분류됩니다. 1990년대 이전에 개발된 1세대 치료제들은 환자의 발작 완화에는 도움을 줬지만 신경계 이상, 호르몬 이상과 같은 부작용 등 한계가 있었습니다. 1세대 제품을 보완해 출시된 다국적 제약사 UCB의 ‘케프라’, 얀센의 ‘토파맥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라믹탈’ 등 2세대 제품은 기존 치료제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장기 복용 시 나타나는 부작용이 감소해 많이 쓰여 왔습니다.
국내에 2011년 출시된 UCB의 ‘빔팻정’은 3세대로 분류됩니다. 이전 세대의 약물과 다르게 흥분성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세포의 나트륨 통로를 통제해 발작 증상을 막습니다. 새로운 기전으로 접근해 기존 약물로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의 대안이 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약물과 상호 작용이 적어 여러 치료제를 동시에 복용하는 뇌전증 환자의 복용 부담을 줄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빔팻정’은 세계 1위 뇌전증 치료제로 자리 잡았는데요. 다만 국내에서 보험급여가 안 돼 한 알(100mg)에 3000원으로 약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다행히 최근엔 빔팻정의 제네릭인 SK케미칼의 ‘빔스크정’이 동일 성분 중 처음으로 보험 급여에 등재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환자의 부담은 209원으로 빔팻정에 비해 약값을 10분의 1 이하로 줄였습니다. 빔스크정은 50mg, 100mg, 150mg, 200mg 네 가지 용량으로 출시돼 치료 경과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 뇌전증 환자의 복용 편의성을 개선했습니다. 날로 발전하는 뇌전증 치료제만큼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 환자들에 대한 모난 시선이 해소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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