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뉴스룸]‘히든 챔피언’으로 의약 강국 오른 벨기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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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벨기에 제약회사 ‘아블링스’는 2001년
설립된 임직원 400명의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가 현재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와 공동 개발하는 항암면역 치료제는 향후 수입이 44억 달러(약 4조97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점쳐진다. 이런 대박 사례는 벨기에 제약 벤처기업들에 종종 있는 일이다. 아블링스는 현재 ‘머크’ ‘노바티스’ ‘베링거인겔하임’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과 함께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구 약 1100만 명의 벨기에는 경상도만 한 크기다. 이 작은 나라가 글로벌 신약 5%를 개발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100대 핵심 의약품 중 5개가 벨기에에서 개발됐다. 그렇다고 1961년 미국의 존슨앤드존슨에 인수된 얀센을 빼면 대형 제약회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중소 제약회사들도 신약 개발에 매진한다. 그럼에도 신약 개발과 임상 실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세계 상위 30개 제약회사 중 29개가 벨기에에서 연구소 등을 운영할 정도다. 경제 효과도 크다. 벨기에의 2015년도 의약품 수출액은 413억 유로(약 50조7990억 원)로 전체 수출액의 11%를 차지한다.

비결은 무엇일까. 김연희 주한 벨기에대사관 플랑드르경제대표부 투자상무관은 “첫 출발은 제약회사 얀센의 창업주 폴 얀센 박사”라며 “얀센 박사는 1953년 신약 개발을 위해 회사를 세웠고 평생 신약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기간 수익만 노리며 복제약 생산에 매달리는 국내 제약회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얀센 출신들은 ‘신약 개발’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며 크고 작은 제약회사를 설립했다.

정부도 나섰다. 플랑드르 지방 정부는 1996년 플랑드르생명공학연구원(VIB)을 출범시키며 신약 연구개발(R&D), 기술 이전, 창업을 적극 도왔다. 대학, 병원, 연구소는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아블링스처럼 대학과 VIB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가 모태인 기업들이 생겨났다. 행정 절차도 간소하게 바꿨다. 1단계 임상실험은 의약 당국에 서류를 제출한 뒤 2주 안에 실험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 유럽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다. 세금도 대폭 내렸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수십 년 동안 약효가 비슷한 복제약을 생산하며 영업에만 매달렸다. 한 제약회사 창업주는 사석에서 “당장 국내 제약회사 절반 이상이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다만 최근 R&D에 관심을 보이는 제약회사들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정부도 구호만 외쳤을 뿐 투자에는 인색했다. 전체 R&D 투자액의 고작 8%만 책임졌다. 벨기에(40%), 미국(37%), 일본(18%)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어쩌면 자본, 시간, 정부 지원은 기본이다. 진짜 승자가 되려면 창의적 개방성까지 요구된다. 아블링스 직원은 19개 국가에서 왔다. 투자금도 벨기에 자본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들어왔다. 지난해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자동차, 반도체보다 큰 약 1400조 원으로 추산된다.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경제엔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아직 해야 할 일은 많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
#히든 챔피언#의약 강국 벨기에#아블링스#창의적 개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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