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화병’ 숙종이 소 학살극까지 벌인 약재 ‘우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8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어린 시절, 시골 우리 집 재산목록 1호는 소였다. 40여 년 전 부모님이 “소가 황에 걸렸다”며 당황해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황’은 지금으로 보면 황달이었다. 내 기억엔 주로 뒷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는데 치료법이 딱히 없어 소침을 뒷다리에 놓고 낫기를 기다렸다. 이런 소가 살아남으면 몸속 쓸개에 우황이 생긴다. 중국 청나라의 약학서 ‘본경소증’은 우황의 생성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봄철 전염병(바이러스성)이 돌면 소도 독을 마신다. 독은 육체와 정신의 빈 곳을 공격한다. 소가 건강하면 소의 정기에 독이 진압돼 내부에서 응결된다. 이런 힘의 정수가 우황인데 정서장애나 열성경련을 치료한다.’

우황의 약효를 대변하는 우황청심원은 조선의 베스트셀러 약이다. 옛사람은 우황이 든 소를 어떻게 구별했을까. 본경소증은 ‘소의 몸속에 우황이 있으면 밤에 몸에서 빛이 나고 눈에 핏발이 있으며 수시로 운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물에 자기 모습을 잘 비춘다. 동이에 물을 받아 소한테 대주면 웩웩거리다가 물에 우황을 떨어뜨린다’고 썼다.

외관으로는 우황을 품은 소를 구별하기 어려웠던지 조선왕조실록에는 우황을 구하기 위해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기록이 있다. 평생 화병을 안고 살았던 숙종의 일화다. 재위 39년(1713년) 화병이 극에 달한 숙종은 생우황을 대궐 안으로 들이라고 명령한다. 수백 두의 귀한 소가 도살됐지만 우황은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소 학살을 보다 못한 신하들이 만류 상소를 올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황을 품고 있는 쓸개, 즉 담(膽)은 마음의 상태와 종종 연결된다. 겁이 없고 용감하다는 뜻의 ‘담이 크다’는 말부터 ‘말(馬)은 쓸개가 없어 겁이 많다’거나 줏대가 없다는 뜻의 ‘쓸개 빠진 ∼’이라고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는 분노로 달아오른 마음을 쓸개의 쓴맛으로 진정시킨다는 의미다. 다양한 색깔의 음식물도 쓰디쓴 쓸개즙을 만나면 삭여져 모두 노란색으로 변한다. 손톱으로 우황을 그어 노란 줄이 생기는지 여부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한 것도 그런 이유다. 우황은 쓸개즙이 농축돼 담석이 된 것이므로 노랄수록 삭이는 힘이 강하다고 봤다.

한의학이 보신의 약재로써 쓸개를 보는 관점은 현대의학과 차이가 크다. 담을 몸에 봄 같은 생기를 불어넣는 보약으로 보는 것. 본경소증은 ‘담은 양기의 맨 앞이다. 변화를 가장 먼저 퍼뜨리며 용솟음쳐 나오는 기운으로, 마치 봄기운과 같다’고 적었다. 봄은 영어로 ‘SPRING’이다. 이 영어 단어에는 샘과 용수철이란 뜻도 있다. 담에는 샘처럼 깊고 용수철처럼 솟아오르는 기운이 있다. 복용하면 힘과 정력이 흘러넘친다는 게 담의 또 다른 한의학적 약효 풀이다. 이처럼 진정 작용과 강장 기능을 모두 갖춘 담의 본질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준다. 복잡하게 꼬인 일 때문에 마음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큰일을 앞두고 자신감이 부족하고 힘이 빠졌을 때 우황청심환을 먹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화병#숙종#우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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