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밍크고래의 죽음과 소리 생태계의 파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엊그제 인천 소청도 해상에서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포획 흔적은 없었다고 하나 어떤 이유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혹시 소음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가정해 본다. 소리에 민감한 고래가 바다의 소음 공해로 인해 죽게 된 건 아닐까.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소음이 고래에게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되었다면 정말 큰일이다.

고래의 경우 빛이 없고 어둠이 가득한 바다에서 소리로 앞을 본다. 소리(음파)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으로 앞에 무엇이 있음을 안다. 포유류인 고래들이 숨을 쉬러 물 밖으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근처 얼음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들으며 표면의 얼음이 두꺼운지 혹은 없는지 파악한다.

시각이 중요한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청각에 목숨을 건다. 올 초 종영한 5부작 다큐멘터리 ‘야생의 스파이’에 바람까마귀가 소개된 적이 있다. 바람까마귀는 가짜 울음소리를 내어 미어캣을 속이고 먹이를 가로챈다. 자연에서 소리는 단지 소통의 차원뿐만 아니라 상대를 속이고, 목숨을 걸고 싸울 때 무기로 작용한다. 육지뿐 아니라 물 아래도 소리의 풍경은 꽤 복잡하다. 새우, 물고기, 해양 포유류들은 모두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파악하고, 다른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먹이와 포식자의 위치를 탐색한다.

1900년대 초중반부터 과학자들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1948년 야생에서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1969년에는 캐나다 출신 환경운동가 머리 셰이퍼가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소리(sound)와 풍경(landscape)의 조합이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야생의 자연에서 소리를 녹음하고 어떤 문제가 없는지 비교 분석한다. 셰이퍼는 소리 풍경이 생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열대우림 속 소리들을 녹음했다. 20세기가 저물 무렵부터 소리 풍경이 본격 연구되기 시작했다. 소리에 담긴 생태학적 의미를 도출하려는 노력이다.

낮과 밤에 풀벌레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대마다 우는 풀벌레가 다르다. 만약 같은 시간대에 울더라도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내어 다른 종과 소리가 겹치지 않게 한다. 소리 풍경은 탁 트인 지역, 건조한 지역, 초목의 밀집 정도, 지역의 지질에 따라 다르다. 여기서 동물들은 특정 주파수를 이용해 자신만의 청각적 위치를 가진다. 곰, 악어, 일부 개구리는 낮은 음역을, 일부 조류와 개구리는 중간 음역을, 곤충은 높은 음역을 차지한다. 소리 풍경은 또한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여름 곤충이 울던 소리 자리를 가을 곤충이 이어 받는 것처럼 말이다.

소리가 가진 고유의 지문이 바로 주파수다. 인간은 지구의 소리 가운데 평균 20∼2만 Hz(헤르츠) 범위를 듣는다. Hz는 진동수를 나타낸다. 20Hz의 경우 1초에 20번 진동한다는 의미다. 귀는 이러한 진동을 잡아 전기신호로 바꾸어 뇌로 전달한다. 베토벤의 ‘월광’, 모차르트의 ‘작은 별’, 슈베르트의 ‘송어’ 같은 작품들은 자연의 소리가 예술로 탄생한 경우다.

해양생태를 연구하는 케이트 스태퍼드 박사는 북극의 소리를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TED 강연을 통해 북극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를 경고했다. 지난 30년 동안, 북극에서 6주∼4개월에 이르는 계절적 해빙이 줄었다. 얼음이 줄면 바닷길이 드러나면서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인간의 배가 북극으로 항해하며 소음을 유발한다. 둘째,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동물들이 북극으로 침범하며 먹이 경쟁과 질병을 늘린다. 셋째, 파도 물기둥을 막던 얼음이 줄면서 파도의 소음이 늘어난다. 인간은 석유와 가스 탐사 및 추출 혹은 관광을 위해 선박이 드나들며 북극을 시끄럽게 한다. 사람들이 쏘는 공기총은 북극 동물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인다. 고래들은 소음으로 인해 수영과 소통 방식을 바꿔야 한다. 즉 북극에 있는 해양 포유류들이 소통할 수 있는 소리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진동이 과하면 유리가 깨지듯이 과한 소음은 지구의 소리 풍경을 파괴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만든 극초단파(전자기 주파수)는 바다뿐 아니라 육지 소리에도 무수한 구멍을 냈다. 자기장을 이용해 살아가는 벌과 일부 새들을 교란시킨 것이다. 소리는 생물다양성과 직결된다. 다양하고 풍부한 소리는 그만큼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인천 앞바다에서 죽은 밍크고래가 온몸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진 않았을까. 지금, 내 주위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볼 때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밍크고래#야생의 스파이#바람까마귀#소음#소리#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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