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서해안엔 물고기들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진다. 산란철을 맞은 수컷 조기들이 연인을 유혹하기 위해 ‘뽁뽁’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대나무 통을 바다에 꽂고 귀를 기울이면 수컷 조기들의 우렁찬 사랑 노래를 엿들을 수 있다. 무려 192dB(데시벨)이 넘는 소리다. 바닷속은 록음악 콘서트장보다 시끄러운 장소로 변한다.
바닷속 생태계는 고요할 것만 같지만 사실 1000여 종의 물고기가 저마다 소리를 내는 소란스러운 곳이다. 물고기의 부력을 조절하는 ‘부레’가 사람의 성대 역할을 한다. 부레를 감싼 ‘소리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할 때 생기는 진동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이다. 이나 뼈 같은 단단한 신체 부위를 충돌시켜 소리를 내는 종류도 있다. ○ 물고기가 내는 소리…용도는 제각각
소리도 종마다 가지각색이다.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나비고기의 경우 10∼150ms(밀리초·1ms는 1000분의 1초)의 아주 짧은 순간만 소리를 낸다. 반면 아귀는 아주 큰 소리를 몇 초에서 몇 분씩 길게 내 3∼6m 떨어진 곳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과거엔 소수 어종이 짝짓기를 하거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고기마다 소리를 내는 사정들이 다르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크레이그 레드퍼드 미국 오클랜드대 교수팀은 소리를 자동차 경적과 같은 교통신호 용도로 사용하는 종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실험생물학 저널’ 지난해 1월호에 발표했다. 뉴질랜드 근해에 사는 어종 ‘빅아이(Pempheris adspersa)’는 이동 과정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무리에서 이탈하는 일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소리를 사용한다.
경쟁자와의 싸움이 얼마나 격해지는가에 따라 소리를 바꿔 가며 내는 물고기도 있다. 에리크 파르망티에 벨기에 리에주대 교수 팀이 2011년 ‘실험생물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육식성 물고기 피라냐는 상황에 따라 3가지의 소리를 낸다. 신경전 단계에선 부레를 살짝 진동시켜 물러서라는 소리를, 상황이 더 고조되면 빠른 북소리를 내다가 서로 쫓고 쫓기며 싸우는 육탄전이 벌어지면 턱을 갈며 사람이 이를 가는 듯한 소리를 낸다.
물고기 소리의 사연을 알게 된 건 ‘수중 청음기(hydrophone)’의 발전 덕이다. 배 아래로 수중 마이크를 달거나 스쿠버다이버가 직접 운반하며 물고기의 발성을 기록하는 장비다.
○ 소리로 정확한 위치 파악해 어종 보호에 이용
이렇게 엿들은 소리를 물고기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소리를 관찰해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시기엔 조업을 제한하자는 얘기다.
티머시 로얼 미국 텍사스대 연구원 팀은 멕시코만 조기들의 소리를 파악해 남획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기술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14일자에 발표했다. 100만 마리 이상의 조기가 북쪽으로 모여드는 멕시코만의 산란철은 어부들 입장에선 좋은 기회다. 한 곳에서 쉽게 수많은 조기들을 잡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조기 입장에선 갓 태어난 새끼들이 성체로 성장할 기회조차 잃게 되는 참담한 시간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론 새끼들이 수산자원으로 ‘재가입’하는 순환이 되지 않으면 점차 수산자원이 줄어든다는 문제도 있다.
연구진은 수중 청음기를 이용해 조기의 소리를 들으면 조기들이 모여드는 시기와 위치, 이동 방향 등을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은 “과거 선조들도 조기 떼를 찾아내기 위해 대롱을 물속에 꽂아 소리를 듣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나친 어획은 생태계를 해치기 때문에 이번 연구를 활용해 물고기가 모여드는 공간을 ‘금어구’로 설정하거나 해당 시기를 ‘금어기’로 설정하는 방법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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