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JW성천상’ 받는 한원주씨
남편과 사별하며 삶의 근원에 의문… 부친이 먼저 걸었던 봉사의 삶 선택
질병 치료뿐 아니라 상담-후원까지… ‘전인치유진료소’ 개념 국내 첫 도입
은퇴후에도 요양병원서 진료활동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기 남양주시의 매그너스 재활요양병원. 이곳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환자들을 돌보는 ‘현역 의사’가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 병원까지 접으며 의료 봉사를 39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 병원의 한원주 내과과장(91) 이야기다.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소외계층을 돌봐온 그가 다음 달 상을 받는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제5회 성천상’의 수상자로 한 과장을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성천상은 고 이기석 JW그룹 창업자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의료복지에 기여한 의료인에게 주는 상이다.
한 과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상 탈 자격이 없는데 부끄럽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고령으로 자신의 몸도 성치 않지만 이날 오전 진료를 모두 무리 없이 마친 직후였다.
그가 처음부터 의료 봉사를 했던 건 아니었다. 1949년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서울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로 활약했다. 미국 내과전문의 자격도 함께 따서 미국에서 10년간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52세가 되던 1978년 남편과 갑작스럽게 사별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삶이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의사였던 아버지가 의료 봉사를 많이 했던 게 떠올랐어요. 저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1979년부터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진료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얼마 후엔 개인 병원마저 문을 닫고 의료 봉사에 전념했다. 진료소에서는 교통비 외에 따로 급여를 받지 않았다.
1982년에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는 ‘전인치유 사업’을 벌였다. 사람들의 질병이 정신과 환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질병을 치료해주는 것은 물론 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고, 환자의 생활환경이 나아질 수 있게 후원까지 했다.
“중풍에 걸려 찾아온 50대 남성 환자를 잊을 수 없어요. 안양천변에 움막을 짓고 살았었죠. 자신도 아플뿐더러 아내도 중풍으로 집에 누워 있다 했었죠. 그는 ‘우리 부부가 죽지 못해 자식들에게 못 할 짓을 한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한 과장은 이 환자의 가족들을 치료하면서 생활 터전도 마련해줬다. 움막에 찾아가 쌀과 연탄을 주고, ‘오리를 키워보겠다’는 얘기에 오리 300마리와 사료 2년 치도 지원했다. 얼마 뒤 그 남성은 자신이 받았던 금액의 3분의 1을 들고 찾아왔다. 전인치유 사업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독일 개신교 중앙개발원조처(EZE)에서 운영 예산을 후원받기도 했다.
이후 2008년 지금의 매그너스 재활요양병원에 왔다. 전인치유 사업을 벌였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몸도 아프지만 마음도 아픈 요양병원 환자들이 많다는 생각에서였다.
“요양병원 환자들의 근심을 덜어주려다 보니 오히려 제가 위로받고 보람도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의 여생도 노인 환자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게 현역 의료인으로서 이분들의 곁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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