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많은 상을 받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상은 ‘젊은 과학자상’입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일 늦은 오후, 대전 KAIST에서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53)를 만났다. 이 교수는 미생물을 활용해 사람에게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시스템 대사공학’ 연구 분야 창시자다. 미생물에서 비식용 바이오매스를 얻어 휘발유나 나일론, 플라스틱 같은 석유 화학 제품을 만든다. 시스템 대사공학을 시작한 이래 이 분야에서 학술지에 공식적으로 출간한 논문만 현재까지 560편에 달한다. 최근에는 이 공로로 한국을 대표할 업적을 가진 과학기술인에게 주는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젊은 과학자상이 당시 34세였던 자신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국민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감동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교수를 연구에 집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당시 수상자에게 지원했던 연구장려금의 혜택도 컸다. 2012년까지 젊은 과학자상 수상자에게는 연구장려금을 5년간 연간 3000만 원씩 지원했다. 연구 규모가 커진 지금에야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1998년 당시 물가로 3000만 원은 중형차 2, 3대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교수의 새내기 교수 시절 세 번째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들어왔던 정기준 현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당시 이 교수의 연구실에 대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실험실에 들어섰을 때 이 교수 밑에서 연구를 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랬던 연구실에 젊은 과학자상의 연구장려금은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귀중한 기초자금이 됐다.
이 교수 연구실의 성과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만 30세 초임 교수가 젊은 과학자상을 받기 전까지 발표한 논문은 38편. 연구장려금을 받은 이후 5년간 나온 논문은 85편에 달한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당시 이 교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연구원 9명은 지금 모두 대학 교수나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이 분야를 선도해 가고 있다. 이들 외에도 그동안 이 교수가 지도하고 키워낸 석·박사 및 연구원은 100명이 넘는다.
“제자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함께 연구하는 것이 한결같은 목표입니다. 제자들 중에 ‘청출어람’이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를 이끌고 나가는 과학자는 후배 과학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 이 교수는 “유행을 따르지 말고 기초 단계부터 충실히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과제를 따기 위해 유행을 좇아 연구를 계획하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 수 없고, 장기적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을 찾기 어렵다. 젊은 과학자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까지 도달한 과학자는 후배들에게 이런 충고를 남겼다.
“공학은 지구 환경을 보호하면서 인간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 풀고자 하는 문제가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인지 근본부터 따지고 탐구해야 합니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이 불변의 진리인 겁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젊은 과학자상의 수여 방식에 대해 작은 바람을 밝혔다. 이 교수가 수상할 당시에는 수상자들이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대통령을 만났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직접 상을 주고 인정해 준다는 건 과학자에게는 큰 의미가 됩니다. 특히 이제 갓 연구를 시작한 젊은 과학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합니다. 작은 배려로 큰 연구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정책 당국자가 알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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