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식물 ‘쑥쑥’… 아열대권 들어선 제주, 한반도가 위험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한반도 아열대 최전선, 제주를 가다

14일 제주시 한경면 산양 곶자왈 수풀 안에서 현화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사가 빌레나무 무리를 가리키고 있다. 아열대와 열대지역에 사는 빌레나무(작은 사진 중 위)는 2006년 제주 자생 사실이 확인돼 새로운 자생식물로 등재됐다. 곶자왈 지역의 넓적한 바위 ‘빌레’의 이름을 땄다. 아열대식물인 노란별수선(가운데)과 남흑삼릉도 각각 2008년과 2010년 발견돼 새 자생식물로 이름을 올렸다. 제주=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14일 제주시 한경면 산양 곶자왈 수풀 안에서 현화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사가 빌레나무 무리를 가리키고 있다. 아열대와 열대지역에 사는 빌레나무(작은 사진 중 위)는 2006년 제주 자생 사실이 확인돼 새로운 자생식물로 등재됐다. 곶자왈 지역의 넓적한 바위 ‘빌레’의 이름을 땄다. 아열대식물인 노란별수선(가운데)과 남흑삼릉도 각각 2008년과 2010년 발견돼 새 자생식물로 이름을 올렸다. 제주=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공항을 나서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14일 제주도 한낮 기온은 30.7도, 아침기온은 26.0도였으니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상대습도도 87%로 높아 공항 곳곳에 보이는 야자수가 어색하지 않은 날씨였다.

여름이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과 드문드문 장대비를 쏟아 붓는 장마에도 불구하고 아직 겨울이 건재한 한반도는 온대기후에 속한다. 하지만 동남아 같은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야자수가 자라는 최남단 제주도는 이미 아열대권에 들어선 건 아닐까?



○ 수천 km 날아와 싹을 틔운 아열대 나무

요철(凹凸) 형태의 ‘곶자왈’은 화산섬 제주의 고유 지형이다. 14일 찾은 산양 곶자왈의 깊은 수풀은 언뜻 보면 여느 온대의 숲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제주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와 한대 식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현화자 연구사는 키 1∼1.5m에 잎이 크고 반질거리는 나무들을 가리키며 “열대와 아열대에서만 자라는 ‘빌레나무’인데 2006년 처음 발견됐다”고 말했다. 빌레는 곶자왈의 넓적한 바위를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에서는 매년 새로운 열대·아열대 귀화식물(외국에서 들어와 우리 땅에 완전히 정착한 식물)이 발견된다. 2008년 노란별수선, 2009년 영아리난초, 2010년 남흑삼릉이 새로 한반도 자생생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동남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제도 등에서 살던 열대·아열대 식물이다. 어떻게 머나먼 제주도까지 날아왔을까.

김찬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종자가 매우 작기 때문에 제트기류나 태풍에 실려 오거나 철새 몸에 붙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보통 이렇게 날아와 중·고위도에 떨어지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다. 하지만 제주도에 떨어진 열대·아열대 식물들은 하나둘 싹을 틔우고 있다.

아열대는 기상학 용어가 아니라 생태학 용어이기 때문에 명확한 수치 기준이 없다. 독일 학자 쾨펜은 월평균 기온 20도를 넘는 달이 연중 4∼11개월인 곳, 미국 학자 트레와다는 월평균 기온 10도를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인 경우라고 정의했다. 턱걸이나마 제주는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

제주도의 여러 기상적 특징도 점점 아열대 지역의 모습을 띠고 있다. 북위 33도 제주의 지난해 연평균 기온은 17도. 북위 23도에 위치한 아열대 기후 지역 대만의 연평균 기온이 20도 정도다. 섬인 탓에 기본적으로 일교차가 작다. 강수량은 우리나라 최다우(最多雨) 지역으로, 전국 연강수량 평균이 1000∼1200mm인데 제주는 1500mm 전후다. 2015년에는 1728.3mm가 내렸다. 온난다습한 동남아와 같은 모습이다.

○ 머지않아 선보일 제주산 노지 바나나

제주의 겨울철 기온과 강수량도 변하고 있다. 제주도의 12∼2월 기온은 1970년대(1973∼1980년) 6.7도에서 2010년대(2011∼2016년) 7.3도로 올랐다. 제주도에 자리 잡은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때 2100년 한반도의 강수량은 15% 늘고 특히 겨울 강수량이 30.8% 많아진다는데, 40년 새 제주의 겨울 강수량은 168.5mm에서 224.5mm로 33.2%가 훌쩍 뛰었다.

온대작물 파초가 아니라 열대과일 바나나를 제주 노지에서 만나는 날도 머지않았다. 바나나는 강수량과 일조량이 풍부하며 연중 월평균 기온 10도 이상인 아열대 지방에서 잘 자란다. 현화자 연구사는 “지금도 바나나를 (제주 노지에) 심는다면 열매 맺기는 어렵겠지만 나무가 자라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불과한 제주가 아열대화했다면 내륙 지역도 조만간 영향권에 들어갈까? 부경온 국립기상과학원 기후연구과 연구관은 “온실가스가 줄지 않고 지금 수준으로 계속 나온다는 가정 아래 한반도는 2030년대부터 기존 생태계가 적응해 온 변동 폭 이상으로 기온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그렇다는 뜻이라 당장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미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기후변화 때문으로 추정되는 여러 이상기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은 최근 이런 기상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별도의 팀을 구축했다. 아주 좁은 지역에 시간당 8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다든가 특정 지역에 기상관측사상 유례없는 고온이 나타나는 등 특이기상 현상의 원인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장기적인 기후변화와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도 연구할 계획이다. 이런 노력이 제주에 도착한 아열대 기후의 전진을 조금 늦출 수 있을까?

제주=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한반도 아열대#제주#아프리카 식물#아열대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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