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나았다. 시원했단 뜻이 아니라 덜 더웠다는 뜻이다. 7일 새벽 최저 기온은 서울 기준 26.4도. 하루 전인 6일 뿌려준 단비 덕분인지 밤 기온이 하루 전에 비해 떨어졌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열대야’를 보였던 6일이 일요일이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6일 새벽 최저기온은 28.2도였다. 녹아내릴 것 같던 지난해 여름에도 볼 수 없었던 최저기온이다. 서울 최저기온이 이보다 높았던 날은 2014년 8월 2일 기록된 28.7도였다. 그러니까 지난 주말 서울 사람들은 1101일 만에 가장 더운 밤을 보낸 셈이다.
1981년부터 8월 기온을 모두 살펴봐도 이 때보다 최저기온이 높았던 날은 딱 두 번 밖에 되지 않는다. 폭염이 역대 최고로 맹위를 떨치던 1994년 8월 15일 최저기온은 28.8도. 그 뒤로 2012년 8월 4일에 28.2도가 기록된 적이 있다. (즉, 6일 새벽은 1908년 서울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3번째로 더운 8월 밤이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이제나 저제나 좀 시원해질까’ 하는 희망고문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보게 되는 게 최저기온이다. 밤사이 기온은 사실상의 ‘여름 끝물’을 정의하는 ‘민간 척도’ 역할을 한다. 완연한 가을에도 햇볕이 쨍쨍하면 낮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기는 날이 적지 않아 여름 끝물을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서다. 그럼 대체, 언제쯤 시원해질까. “8월 15일이 지나면 밤더위는 한 풀 꺾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말일까.
위 표를 가지고 8월 여름 평균기온을 그래프로 그렸다. 푸른 색 선으로 그려진 36년 평균 최저기온을 보면 8월 15일에 23.1도로 떨어진다. 이후에는 확연하게 기온이 낮아진다. 최근 10년 (2007~2016년) 최저기온은 36년 평균보다 1도 가까이 높지만 역시 15일이 되면 23도 근처로 떨어지면서 가을을 준비한다. 20일 경 한 번 정도 ‘최후의 발악’을 한다는 점 정도만 다를 뿐 추이는 비슷하다.
역대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됐던 1994년은 어땠을까. 그해 8월 15일 수은주는 역대 가장 더운 밤으로 기록된 28.8도를 찍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밤 기온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하루에 1, 2도씩 예사로 떨어지며 결국 19일 이후 최저기온 23도 이하로 떨어졌다. 역대급 더위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밤 기온 26도를 넘나드는 열대야가 24일까지 지속됐다. 원인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동쪽 오호츠크해에 강하게 자리 잡은 키 큰 고기압 때문이었다. 동쪽 고기압이 뜨거운 공기를 계속 몰고 왔는데 서쪽으로 빠져나갈 공간이 막히면서 한반도가 마치 사우나처럼 사방이 막힌 뜨거운 공간이 돼 버렸던 것.
오호츠크해의 고기압을 밀어내 길을 터주고 한반도에 비도 뿌려 더위를 끝낸 것은 유난히 희한한 경로로 움직였던 지난해 제10호 태풍 ‘라이언록’이었다.
열대야가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8월 24일의 우리나라 주변 5.5km 상공 일기도. 왼 쪽 아래 자리잡은 고기압 때문에 밀려온 더운 공기가 오른 쪽에 자리잡은 고기압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여름 더위를 얘기할 때 최고기온을 많이 본다. 하지만 낮엔 덥더라도 밤이 시원하면 푹 잘 수 있고 체력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된다. 밤이 더우면 피로가 풀리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소화불량까지 덤으로 찾아온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틀고 자면 여름 감기에 걸리기 쉽다. ‘더위 끝’을 이야기할 때 낮 기온만큼이나 밤 기온이 떨어지는 시기가 체감 상 크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험으로 보나 데이터로 보나 무더위는 어지간해도 8월 셋째 주를 넘기지 않았다. 8월 둘째 주가 시작됐다. 앞으로 두 주만 더 참으면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간다.’
그럼 밤이 시원해지는 ‘여름 끝’이 아닌 ‘진짜 가을’은 언제 찾아올까. 아래 기사에 답이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