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FM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편단심 AM을 고집하는 통신 수단이 있습니다. 여행갈 때 타게 되는 비행기가 서로 통신할 때 쓰는 ‘항공무선통신’입니다.
그 좋은 FM 방식을 놔두고 항공기는 왜 AM 방식을 사용할까요. 한 마디로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항공 관제를 담당하는 인천비행정보구역(RKRR FIR)에는 동시에 최대 수백 대의 비행기가 몰려듭니다. 한국의 항공교통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인천항공교통관제소는 이 지역을 다시 최대 12개로 나눠 비행기가 안전하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제어합니다. 즉, 관제소 한 곳에서 교신해야 하는 비행기가 수십 대라는 얘기죠.
안전하게 비행기를 유도하기 위해 관제사들은 각 비행기들과 1대 1로 통신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너무 많다보니 두 대 이상의 항공기가 동시에 관제사를 찾기 위해 교신 버튼을 누르는 일이 종종 발생하죠. FM 방식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비행기들이 FM 방식으로 동시에 통신을 시도할 경우 둘 중 한 대가 보내는 통신 신호는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포획 효과(Capture Effect)’라고 부르죠. 한 통신채널로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신호가 들어올 때 FM 통신 장비는 이 중 약한 신호를 잡음으로 인식하고 완전히 없애버립니다.
이런 현상은 방송국 같은 곳에서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방송국 한 곳이 한 개 채널을 독점하고 일방적으로 전파를 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주파수를 수십 대 비행기가 함께 사용하는 항공 통신에서는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공중에서 고장난 비행기가 급하게 타전한 비상상황 메시지가 사라져버린다면 결과는 끔찍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AM은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두 항공기가 동시에 교신을 시도하면 관제사의 이어폰에는 이론적으로 두 사람 목소리가 겹쳐 들리게 됩니다. 물론 1대 1 교신이 원칙인 항공 통신에서 이런 상황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죠. 그래서 항공통신장비에서는 두 대 이상의 교신이 겹치게 되면 일부러 잡음을 발생시켜 관제사나 조종사가 상황을 인식하고 다시 한 번에 한 대씩 통신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최근의 항공 통신은 여러 겹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타는 비행기는 공항 탑승구에서 움직이기 전부터 관제탑과 교신하며 철저히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입니다. 일부에서는 항공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얼굴이 완전히 똑같은 네쌍둥이가 태어날 확률보다 낮다는 계산을 내놓기도 했죠. 곧 추석 황금연휴입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신 모든 분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하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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