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지는 아바나 해변의 낭만, 시가 연기와 느린 삶의 여유, 열정적인 살사와 룸바…. 낭만주의자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쿠바의 모습이다. 그런 쿠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야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피해를 현격히 줄이는 ‘허리케인 대피 프로그램’이다.
섬나라 쿠바는 열대성 저기압이 빈번히 발생하는 카리브해를 끼고 있다. 좁고 길게 생긴 국토는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경로다. 쿠바 역사상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남긴 허리케인은 1932년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3000명이 넘었다. 1963년엔 플로라로 2000명이 희생됐다.
쿠바는 ‘플로라 참사’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허리케인 대피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이 덕분에 2008년 최고 시속 230km의 바람을 몰고 온 ‘아이크’가 카리브해를 강타했을 때 전 국민의 4분의 1을 사전에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망자는 7명에 그쳤다. 2016년 매슈 때도 이웃 국가 아이티는 1000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본 반면 쿠바의 사망자 수는 4명에 불과했다.
쿠바의 허리케인 대피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국방부 산하 민방위대(Civil Defense)가 있다. 민방위대는 모든 마을을 구역별로 촘촘하게 망을 짜 시민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제때 대피하도록 돕는다. 민방위대는 매년 메테오레스(M´et´eores)로 불리는 허리케인 대피 훈련을 하는데 훈련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가해 실전을 방불케 한다.
2주 전 허리케인 어마가 미국 남동부와 카리브해를 강타했을 때 쿠바의 대피 프로그램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자. 먼저 7일 오후 국립허리케인센터가 카마궤이 등 4개 지역에 허리케인경보를 발령했다. 민방위대는 즉시 관공서 건물에 의료진과 식량을 갖추고 저지대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당시 쿠바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인 100만 명이 대피했다. 쿠바 정부는 화재에 대비해 전기와 가스 공급을 차단했다. 쿠바 국영TV는 8일 24시간 허리케인 특별방송을 내보냈다. 어마는 10명의 인명 피해를 남기고 쿠바를 떠났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대피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쿠바의 허리케인 대책이 완전한 건 아니다. 인명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지만 열악한 정부 재원과 가난 등으로 사후 피해 복구는 더디다. 그럼에도 쿠바에는 허리케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오랜 시간 체화된 ‘국민 문화’가 있다. 아바나 해변의 여유로움과 쿠바 재즈의 강렬한 열정 이면에는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안전 문화’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처음으로 국가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세운 데 이어 지난해 2차 대책을 수립했다. 범정부 차원의 통합 대책을 세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매년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대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7월 충북 청주에 물폭탄이 쏟아져 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가장 큰 원인은 열악한 하수시설과 빗물 저류(저장)시설에 있었다. 쿠바에도 시속 250km의 바람과 6m 높이의 파도를 견디는 시설은 없다. 피해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한 시설이 아니다. 제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피해를 줄이려는 시민들의 ‘문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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