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질병의 징후는 조기에 알아내야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다만 조기 검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갑상샘(선)암은 사망률이 높지 않은 반면 발병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조기 검진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갑상샘암 발생 지역별 최대 15배 차이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가 1999∼2013년 5년 단위로 15년간의 수치를 분석한 ‘시군구별 암 발생 통계 및 발생지도’ 보고서에 따르면 시군구별 암 발생률은 암 종류에 따라 적게는 2배, 많게는 15배까지 차이가 났다.
특히 갑상샘암은 지역별 암 발생률(거주민 10만 명당 암 진단자)이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2004∼2008년 구간에서 남자 기준으로 지역별 차이는 14.5배가 됐다. 갑상샘암은 여수, 광양, 순천 등 전남 지역 대부분과 서울, 대전, 대구 등 대도시에서 많이 발생했다. 2009∼2013년 남자 갑상샘암 발생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강남구로 5년간 인구 10만 명당 47.7명이었다. 여자 환자 최대 발생지는 광양으로 인구 10만 명당 185.1명이 발병했다.
국립암센터 측은 “특정 지역의 암 발생률이 높다고 해서 해당 지역의 거주 환경이 암 유발에 영향을 준다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들 지역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갑상샘암 검진율이 증가함에 따라 갑상샘암의 발생률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상적 검진 불필요
여성 암 환자 4명 중 1명은 갑상샘암 환자일 만큼 전체 암 환자 중 갑상샘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다행스러운 점은 ‘착한 암’으로 불릴 만큼 예후가 좋다는 것이다. 실제 갑상샘암의 발병률은 1위지만 5년 후 생존율 또한 100%로 매우 높다. 2015년 9월 국립암센터가 ‘7개암 검진 권고안’ 제정을 통해 ‘갑상샘암은 일상적 선별검사로는 권고하지 않는다’는 검진권고안을 발표한 이유다.
최근엔 진단기술의 발달로 조기 발견도 증가해 종양의 크기가 2cm 미만으로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1cm 미만의 갑상샘암은 경과를 지켜보거나 수술을 통해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갑상샘암 수술을 할 경우 매일 갑상샘 호르몬 약을 복용해야 하고 목소리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수술을 해야 하는 갑상샘암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립암센터 김열 암관리사업부장은 “크기가 작고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더라도 갑상샘암이 발견된 경우 대부분 환자들이 관찰보다 수술을 선택해 수술 뒤 갑상샘 호르몬제를 평생 복용하는 부담을 갖는다”며 “목에 혹이 있거나 목소리가 변화하는 등 갑상샘암이 의심되는 증상이 발견되거나 갑상샘암 가족력 등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적인 초음파 검진을 줄이도록 권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美 “갑상샘암 조기 검진, 건강한 성인에겐 불필요”
2017년 5월 미국에서도 건강한 성인은 갑상샘암 조기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예방의학 전문의와 역학조사관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조직인 미국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는 목의 혹, 목소리 변화 같은 의심 증상이 없는 성인이 갑상샘암 진단 검사를 받는 것은 득보다 실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국제학술지 미국의학협회지에 발표했다. 미국 내 갑상샘암 검진의 정확도와 예방 효과, 갑상샘암 사망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미국은 최근 10년간 갑상샘암 발병률이 연간 4.5%씩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이는 미국 내 발병하는 암 중에서 가장 높았다. 같은 시기에 갑상샘암 조기 검진 역시 확대됐지만, 갑상샘암 환자의 사망률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조기 검진에 따른 예방이나 조기 치료의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갑상샘암 환자들의 예후가 대부분 좋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갑상샘암의 사망률 자체가 워낙 낮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갑상샘암 확진을 받은 환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5.3명이었다. 이들 중 98.1%는 최소 5년 이상 생존했다.
연구진은 갑상샘암 조기 검진이 과잉 진단과 과잉 진료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술 없이 추적 관찰만 해도 되는 환자에게까지 수술을 받도록 권유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제니퍼 린 미국 카이저퍼머넌트 보건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갑상샘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상적인 검진은 받지 않는 편이 좋다”고 권고했다.
갑상샘암 조기 검진, 오히려 건강에 해 끼치는 역설 불러
세계 모든 나라에서 갑상샘암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갑상샘암 과잉 진료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안형식 교수는 1980년대 들어와서 초음파 검사가 도입됐고, 1990년대 후반 초음파 유도 생검법을 사용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안 교수는 4월 대한의사협회가 발행하는 JKMA(대한의사협회지)에 ‘의료에서 과잉 진단의 문제: 암 조기 진단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20년 전까지 대부분 갑상샘암은 목에 압박 증상을 일으키거나 눈에 보이는 결절 등 증상을 통해 발견됐다”며 “지금은 환자들 중 상당수가 초음파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갑상샘 결절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이어 “초음파를 이용한 세포검사는 2mm 이하의 작은 결절에서도 암세포를 발견하고 있다”며 “초음파 검사가 널리 시행되고 이동식 초음파기계의 보급 등 건강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유병률이 증가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갑상샘암의 조기 검진은 치료가 필요 없는 갑상샘암까지 발견해 수술함으로써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필요한 치료로 인한 경제적 부담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게 안 교수의 지적이다.
안 교수는 “과잉 진단은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치료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서 부작용과 위해를 초래한다”고 했다. 또 “의료서비스의 상당수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일부는 필요가 없거나 역효과가 있다. 의료기술이 꼭 필요한 부분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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