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또 혁신… 게놈 해독 기술 숨가쁜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최근 DNA 실시간으로 읽는 기술 등장… 개인이 장비 소유 직접 활용할 전망

게놈 해독 기술이 발전해 온 40년은 기초 과학 분야에서 ‘혁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준 시간이었다. 1950년대에 유전 정보를 실어 나르는 기본 단위가 DNA 분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그 정보를 읽어 생명의 ‘설계도’를 손에 넣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구체적인 성과는 1970년대에 나타났다. DNA를 직접 읽는 대신 짝을 이루는 DNA를 염기로 하나하나 만들어 붙이며 읽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 DNA를 만드는 과정은 벽돌(염기)을 연결해 다리(DNA)를 놓는 것과 비슷한데, 이때 벽돌에 염기 정보를 알 수 있는 특이한 색 페인트를 칠해 이 색을 통해 역으로 DNA 정보를 알아냈다.

1977년 영국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사진)는 여기에서 다시 역발상을 했다. 페인트 벽돌을 일부 섞어 두는 것은 비슷한데 특이한 규칙을 하나 도입했다. 다리를 놓다 이 페인트 벽돌을 만날 때마다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런 공사를 강에서 동시에 무수히 많이 진행한다. 페인트 벽돌을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 강에는 길이가 다른 다리가 가득해질 것이다. 다리를 길이순으로 재정렬해 나열한 뒤에 다리 끝에 놓인 페인트 벽돌만 차례로 읽으면, 전체 다리에 사용된 벽돌의 순서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생어는 이 방식을 염기(벽돌)와 DNA 사슬(다리)에 적용해, 빠르고 정확하게 DNA를 해독할 수 있는 1세대 DNA 해독 기술을 개발했다.

생어는 이 기법으로 최초로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의 게놈을 모두 읽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은 곧바로 인간의 세포 안에 있는 핵 DNA 전체(게놈)를 모두 해독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두 번째 혁신이 일어났다. 30억 쌍에 이르는 게놈을 한 번에 읽어낼 수는 없어서, 여러 사람의 혈액세포에서 얻은 DNA를 잘게 잘라 부분적으로 해독한 뒤 다시 합쳐 한 명 분량을 만들었다.

1980, 1990년대부터 세 번째 혁신이 일어났다. 생어의 기법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한 번에 강 하나에서만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작은 강을 수십, 수백 개 준비한 뒤 그 안에 게놈을 잘게 잘라 나눠 넣어 기기로 동시다발적으로 읽어내는 병렬 해독 기술을 개발했다. DNA 수를 늘리는 증폭의 속도도 빨라지고 자동화됐다. 2세대 DNA 해독 기술 혹은 ‘차세대 해독(NGS) 기술’이다. 여기에 데이터과학이 가세했다. 많은 양의 DNA 해독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의학과 약학 분야에서 게놈 활용 연구의 ‘빅뱅’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게놈 해독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세포에 있는 막단백질 통로 구조체를 이용해 DNA를 실시간으로 바로 읽어내는 기술이다. DNA가 통과하면 염기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전기 신호를 내도록 고안한 단백질 안에 DNA를 가닥으로 통과시키면 정보를 읽는다. 현재 이 방식을 활용한 기기도 상용화됐는데 구조가 간단하고 USB메모리처럼 크기가 작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이사는 “다음 혁신은 크기에서 일어날 것”이라며 “개인이 장비를 직접 소유해 휴대하고, 이를 이용해 병원에 가지 않고도 기본적인 병원균을 판별하는 등 게놈 활용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게놈 해독 기술#미국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생명의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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