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시장에서 AMD는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면 존재감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내세울 프로세서 라인업이 그만큼 존재하지 않아서다. 성능, 전력소모 등에서 유리한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제조사들의 지원도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 프리미엄 또는 게이밍 노트북 시장 경쟁은 더 심각했다.
하지만 AMD가 새로운 프로세서, 라이젠(RYZEN)을 선보이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데스크탑 프로세서로 이미 시장에서 돌풍을 불러 모으는 중이며, 성능이나 전력 소모 등에서도 어느 정도는 시장의 검증을 충분히 거쳤다. 이제 관건은 이를 잘 빚어 노트북 시장에 대응하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난 6월, 대만에서 개최된 컴퓨텍스 2017을 통해 AMD는 라이젠을 활용한 노트북 라인업을 여럿 공개했다. 기존 노트북과 다르지 않은 디자인도 특징이지만 라이젠 프로세서의 강점인 4~8코어가 전달하는 뛰어난 멀티태스킹 능력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GL702ZC(이하 GL702ZC)는 노트북 시장에서 AMD의 위상을 조금은 살려줄 제품이다. 그냥 노트북이 아니라 게이밍 노트북으로써 최고 수준의 사양을 자랑하는 점이 특징이다. 라이젠7 1700 프로세서와 라데온 RX 580 그래픽 프로세서가 탑재된 것만 봐도 그렇다.
라이젠7 1700 그리고 라데온 RX 580
GL702ZC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 온 ROG 라인업 노트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속 재질을 강조한 상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ROG 로고와 캐릭터 라인만 봐도 그렇다. AMD 입장에서는 든든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라이젠을 채택한 첫 ROG 게이밍 노트북이니 말이다. 하지만 디자인적 요소로는 차별화가 없으니 조금 아쉬운 요소이기도 하다.
크기는 17.3인치로 데스크노트로 분류할 정도의 큰 덩치를 자랑한다. 흔히 15.6인치 이상이면 데스크탑 PC를 대체할 목적을 갖는다고 본다. 여기에 게이밍 노트북이라면 그런 성향이 더 강하다. 뛰어난 성능을 제공하게 되면서 덩치는 커지고 자연스레 휴대성과 배터리 효율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크기는 가로 415mm, 세로 280mm, 두께 34mm다. 무게는 3kg를 전후한다. 어지간히 큰 가방이 아니라면 휴대가 어렵고 무게 또한 부담스럽다.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면 휴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신 정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덩치가 크다 보니까 제공되는 부속 단자의 수도 제법 있다. 기기 좌측(디스플레이 정면 기준)에는 HDMI 단자와 미니 디스플레이 포트(mini DP), USB 3.0 단자 1개와 타원형 형태의 USB-C 규격 단자 1개가 각각 제공된다. 여기에 유선 네트워크 단자(RJ-45)와 스테레오 입출력 단자도 달려 있다.
기기 우측에는 USB 3.0 단자 2개가 추가로 제공되며 SD카드 리더기가 있다. 노트북 분실을 막기 위한 켄싱턴 잠금 장치도 눈에 띈다. 켄싱턴 잠금 장치는 자체만으로 보안 능력을 기대할 수 없고 별도 판매하는 액세서리를 구매해 시건해야 효과를 발휘한다.
덮개를 여는 순간 큼직한 디스플레이와 촘촘히 배치된 키보드가 눈에 들어온다. 17.3인치. 만만치 않은 크기로 풀HD 해상도(1,920 x 1,080)가 제공된다. 큰 디스플레이라면 해상도를 그 이상 설정해도 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최적의 게이밍 몰입감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GL702ZC에는 모니터 주사율을 PC 성능에 맞춰 조절하는 AMD 프리싱크(Freesync) 기술이 적용된 상태다. 이 기술로 인해 게임 내에서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빨라져도 항시 일정한 게이밍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기술은 AMD 라데온 그래픽카드에만 대응한다.
원리는 이렇다. 본래 일반 모니터의 주사율은 60Hz, 1초에 60회 깜박이면서 이미지를 보여주는 형태다. 그래픽카드는 1초에 60회라는 신호에 맞춰 이미지를 표시하게 된다. 이를 만족하면 부드러운 게이밍 몰입이 가능하고 아니면 끊기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PC는 1초에 60매 이미지를 표시할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몰입감이 떨어진다.
프리싱크 기술은 모니터 주사율 자체를 PC 성능에 맞춰 구현하게 된다. 예로 PC가 1초에 30매 이미지를 그려낼 정도의 성능을 낸다면 모니터도 30Hz의 주사율로 작동한다. 그 이상이라면 그에 맞춰 주사율을 변경하면서 자연스러운 화면을 그려내게 된다. GL702ZC는 테스트 결과, 모든 주사율에 대응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30~120 프레임에서는 자연스러웠지만 그 이하로 구현되면 끊김이 발생했다.
키보드 구성은 대형 노트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데스크탑 키보드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불편함을 크게 느낄 수준은 아니다.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도록 만들었고 상황에 따라 키보드에 마련된 기능(FN)키를 조합해 노트북 기능을 실시간 조절 가능하다. 키캡에는 LED를 달아 야간에도 키 위치를 바로 인지할 수 있다.
마우스 역할을 맡는 터치패드는 영역이나 질감 모두 만족스럽다. 또한 붉은색 테두리로 영역을 표시해 손가락이 패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 점도 돋보인다. 마우스 클릭 기능은 터치패드 하단의 좌우 영역을 눌러주면 된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눌리므로 사용에 어려움은 없다.
이제 AMD도 노트북에서 승리를 외친다
GL702ZC의 핵심은 AMD로 가득 채워 넣었다. 프로세서는 라이젠7 1700이고 그래픽 프로세서는 라데온 RX 580을 채택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모바일 특화 제품이 아닌 데스크탑에 쓰인 프로세서 그대로 썼다. 성능도 순수하게 데스크탑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마치 작은 크기로 응축한 라이젠 PC 같은 느낌이랄까?
3D마크 파이어 스트라이크 벤치마크 소프트웨어를 실행한 결과를 보자. 총점 9,964, 그래픽 점수는 1만 1,523, 프로세서 성능에 영향을 받는 물리연산 점수는 1만 6,719다. 제법 높은 수준의 성능을 보여주는데 종합 점수에서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정도는 경쟁사 고성능 프로세서에 기본형 지포스 GTX 1060 6GB 정도를 조합한 성능에는 조금 못 미치는 정도지만 부족한 것은 아니다.
라이젠 7 1700 프로세서. 기본적으로 옥타(8)코어 구성에 논리 프로세스 처리 구조를 더해 총 16개의 명령어 흐름을 처리해낸다. 그러니까 8코어, 16스레드 구조인 셈이다. 코어가 더 많으므로 그만큼 연산 작업에 유리하다. 라이젠이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여기에 있다.
콜오브듀티 월드워2를 실행해 보니 초당 55~78매(프레임)로 표현해낸다. 여기에 AMD 프리싱크 기술이 더해지니 시종일관 부드러운 화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인해 초당 표시 매수가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운 몰입감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플레이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를 즐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자주 즐기는 설정으로 게임을 실행하니 초당 45~68매 움직임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디스플레이였다면 부드러웠다가 끊겼다가를 반복할텐데 프리싱크 기술이 더해지니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게이밍에 준비된 사양 때문이었을까? 기자는 모처럼 1등을 거머쥐며 치킨을 섭취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게이머라면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GL702ZC는 최적의 도구가 되어 도움을 줄 것이다.
성능은 인상적인데... 아쉬움은 남아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GL702ZC의 성능은 분명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순수한 컴퓨팅 성능은 물론이고 게이밍 성능까지 탄탄하다. 어디서 순수 옥타(8)코어 프로세서를 품은 노트북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인텔 기반 노트북도 대부분 듀얼(2)코어이거나 쿼드(4)코어 기반이 일부 게이밍 노트북에 채용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RX580의 성능은 지포스 GTX 1060 수준의 만족감을 준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주사율을 변경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그려내는 프리싱크 기술도 갖췄다. 실제로 배틀그라운드나 콜오브듀티 월드워2 등을 실행하니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게이밍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뛰어난 성능과 부가 기능들이 이 제품의 장점이라면 그 장점 때문에 발생하는 엄청난 문제 몇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먼저 게임을 즐긴다면 노트북 스피커로 즐기지 않기를 바란다. 게임 구동 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은 게임 몰입을 방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전투기가 이륙하려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헤드폰을 사용하더라도 일부 소음이 유입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 다음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어댑터다. 이 노트북은 데스크탑 PC용 부품을 쓴다. 때문에 전체적인 전력 소모가 300W에 육박한다. 그래서 어댑터 용량도 347W에 달한다. 그 때문인지 정말 크다. 혹시나 싶어 어댑터 위에 1만 원 지폐를 올려 두었으니 비교에 참고하길 바란다. 물론 이 노트북이 완전한 휴대용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기에 큰 문제라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혹여나 이 제품을 휴대하며 멀티미디어나 여러 작업을 실행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마음 단단히 가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
배터리 지속시간도 아쉽다. 어댑터를 연결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스스로 프로세서와 그래픽카드의 작동속도를 제한하는 구조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밝기를 50%에 맞추고 게임을 즐기니 약 1시간 20분 가량 즐기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서 즐긴다라는 개념보다 그냥 정전과 같은 불미스러운 상황에서 데이터를 보존하는 무정전전원장치(UPS)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GL702ZC의 가격은 214만 9,000원. 프리싱크 기술에 대응하는 17.3인치 풀HD 디스플레이에 라이젠 7 1700 프로세서, 라데온 RX 580 그래픽카드, 16GB 메모리 등 사양을 감안하면 수긍이 되는 제품이다. 노트북 성격 자체가 다소 한쪽에 치우친 경향이 있지만 일단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노트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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