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뉴미디어 전문가를 만나다]<1>‘멀티미디어 저널리즘’ 대가 헤르난데즈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일 20시 36분


“독자를 뉴스로 유인하는 도구는 ‘글(text)’이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 같은 ‘시각 콘텐츠(visual contents)’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론과 언론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1명의 기자가 글도 쓰고 동영상도 찍으라는 것이 아니라 뉴스룸에서 비주얼을 담당하는 인력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멀티미디어 저널리즘(Multimedia Journalism)’ 분야 권위자인 리처드 코치 헤르난데즈(Richard Koci Hernandez·48) 미 버클리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의 조언이다.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은 텍스트, 그래픽, 오디오, 비디오, 앱(app), 빅데이터,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기술을 결합시켜 메시지 전달에 활용하는 보도 기법이다.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리처드 헤르난데즈 교수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리처드 헤르난데즈 교수
헤르난데즈 교수는 사진기자로 출발해 대학교수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누구나 알 만한 명문대를 졸업한 것도, 박사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현업에서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버클리대 정교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리처드 헤르난데즈 교수 인터뷰 영상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 폴라에서 태어난 그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를 졸업하고 사진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실리콘밸리 지역 신문인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서 15년간 기자 생활을 했고 뉴욕타임스(NYT), 타임, 뉴스위크, LA타임스, USA투데이 뉴요커, 와이어드 등에서 일했다. 사진을 잘 찍고 글도 잘 쓰는데다 동영상까지 잘 만드는 기자로 소문난 그는 미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의 비주얼 저널리스트 부문을 수상했고 사진에 관한 수많은 책도 저술했다.

이런 그를 눈여겨본 버클리대가 그에게 교수 자리를 제의했다. 2008년 학자로 변신한 그는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의 원칙(The Principles of Multimedia Journalism: Packaging Digital News)’과 같은 책을 펴내며 커뮤니케이션 및 저널리즘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디지털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버클리대 캠퍼스 풍경
버클리대 캠퍼스 풍경
헤르난데즈 교수는 “아직도 많은 기자들이 비주얼 콘텐츠 담당 인력을 제대로 대우하거나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혼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일갈했다. 아직 한국 여름처럼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9월 21일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대 북쪽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헤르난데즈

교수와와의 일문일답.

Q: 처음 사진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는데.

A: 14살 때부터 사진을 찍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앤설 애덤스(Ansel Adams·1902~1984)가 찍은 요세미티 국립공원 사진을 보면서 사진에 매료됐다. 어떻게 풍경을 이렇게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지 놀라웠다. 이후 삼촌의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다.

Q: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A: 1990년 대 후반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을 취재하며 구글의 초창기 모습을 지켜봤다. 당시만 해도 구글은 약 10명 정도의 직원을 보유한 작은 회사였다. 이 외 넷스케이프, 야후 의 탄생도 지켜봤다. 이런 기업들을 보면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촉이 왔다. 마침 당시 일하던 신문사에서 디지털 혁신을 담당하는 부서에 있으면서 IT 기술을 미디어 산업에 접목할 수 있었다. 1990년 대부터 웹사이트, 팟캐스트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내가 오랫동안 일한 산호세 머큐리 뉴스는 다른 언론사보다 매우 열린 조직문화를 갖춘 곳이었다. ‘온라인 우선(web-first)’의 의미를 이해했고 이에 관해 나와 동료들이 시도하는 여러 일을 지지해줬다. 신문사 안에 멀티미디어 담당 부서를 만들고 나를 책임자로 임명해준 곳도 산호세 머큐리 뉴스다.

원래 신문은 지면의 한계 때문에 많은 사진을 넣기가 힘들다. 내가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1990년 대 초반만 해도 1개의 기사 안에 1장의 사진을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소위 ‘펜 기자’들이 텍스트 양이 줄어든다고 불평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넣은 사진의 크기를 조금만 키우자고 해도 반발이 엄청났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웹사이트에 대용량의 사진을 수십 장씩 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때부터 텍스트, 사진, 동영상를 다양하게 결합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러다 학계로 진출해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을 계속 연구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Q: 많은 언론사의 뉴스룸 구조는 매우 경직돼있다. 아직 많은 언론사에서는 일반 ‘펜 기자’와 ‘사진기자’의 벽이 견고하다.

A: 완전하게 허물어진 건 아니지만 그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글쓰기 능력과 텍스트는 여전히 뉴스 콘텐츠 생산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특정 콘텐츠로 유입되는 포인트는 사진, 특히 동영상이다. 때문에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비주얼 부분을 담당하는 인력이 뉴스 보도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많은 기자들이 사진기자를 제대로 대우하거나 인정해주지 않는다. 20대 때 전업 사진기자로 일할 때는 많은 펜 기자들이 내 이름을 취재원에게 제대로 소개해주지도 않았다. 일부는 이름도 없이 ‘이 친구(This guy)’라고만 소개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좋은 기사는 텍스트와 비주얼을 담당하는 인력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한 사람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

Q: 버클리에서 멀티미디어 저널리즘, 특히 동영상 콘텐츠 생산 관련 강의를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떤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나.

A: 우선 누구를 위해 만드는 콘텐츠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개인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요즘 추세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기존 뉴스에서 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사적인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동영상의 길이도 제약이 되지 않는다. 동영상 콘텐츠가 등장한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짧고 간략한 모바일 콘텐츠를 선호했지만 긴 영상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넷플릭스를 즐겨 보는 사람들은 2시간짜리 동영상도 눈을 떼지 않고 본다.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도 많다. 뉴스 동영상이라고 해서 짧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Q: 누구나 빅데이터를 언급하는 시대다. 빅데이터를 뉴스 콘텐츠에 어떻게 이용해야 하나?

A: 먼저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를 정리하고 이후 데이터 안의 스토리를 찾아내야 한다. 데이터 안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고 발굴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주제와 접목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자료를 뒷받침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를 너무 쉽게 믿는다. 하지만 데이터는 쉽게 조작할 수도 있다. 요즘 문제가 되는 가짜 뉴스를 만들 때도 데이터를 오용(誤用)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더욱 데이터와 ‘사람 이야기(human story)’를 결합시켜야 한다.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에 관한 보도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단순히 데이터로만 이를 알려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호소력을 지닐 수도 없다. 소득불평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거기에 데이터를 더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

Q: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일부 기자들은 매체와 상관없는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자 개개인의 업무 부담도 늘었다. 이제는 기자가 기사도 쓰고 동영상도 만들어야 하고 소셜미디어까지 관리해야 한다.

A: 기자 개개인이 그 자신만의 ‘브랜드’인 시대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특정 기자가 그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개인적 글조차 해당 기자가 소속된 언론 매체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활발하게 운용하는 기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회사의 의견처럼 보일 수 있다는 위험을 늘 인지해야 한다. 트위터 등에 개인적 의견을 올렸다 해고당한 기자들이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고로 해당 기자의 ‘퍼스널 브랜드’가 그가 소속된 매체의 태도, 방향, 목적과 맞아야 소셜미디어 활용이 더 빛날 수 있다.

Q: 많은 언론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미래를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A: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대형 IT 기업들의 힘이 너무 크다. 이들을 규제하는 ‘반(反) 독점법’ 입안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벌면서 이를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관련 데이터도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콘텐츠까지 스스로 생산한다.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이제 콘텐츠 생산기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미래를 논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틈새시장을 공략해 구독료로 살아남는 몇몇 매체가 있지만 구독료로 이런 IT 기업과 맞설 수 있겠나. 사람들이 더 이상 언론이나 언론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미디어 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시대일수록 더더욱 ‘좋은 저널리즘(good journalism)’으로 그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아직은 누구도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Q: 디지털 시대의 ‘좋은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A: 사람들에게 ‘왜(why)’를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보도다. 특정 사건의 정황만 알려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사를 읽는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이런 보도는 단순히 사실(fact)을 나열한 보도를 넘어선 힘과 영향력을 지닌다.

Q: ‘저널리즘의 위기’ 시대에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A: 학생들이 정직하고 진실성(integrity) 있는 기사를 쓰면서 기업가 정신까지 함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표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아직 저널리즘에 희망이 있다’고 느낀다.

샌프란시스코=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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