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렸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찾아왔다. 집집마다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이며 겨울나기 채비에 들어갔다. 단열 에어캡을 유리창에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실내온도를 2∼3도 올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전기히터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사용 측면에서 전기히터는 가장 비효율적인 기기다. 석탄이나 가스로 생산한 전기를 다시 열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엄청나다. 건물마다 설치돼 있는 시스템 난방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24.5%로 미국보다 높다. 우리나라 전력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대상 32개 국가 중 3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저렴하다. 전력 가격 상승률 역시 다른 에너지원보다 크게 낮다. 전력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전력 소비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사실 전기야말로 가장 비싼 에너지다. 1차 에너지인 석탄, 우라늄, 천연가스 등을 원료로 가공해 얻어지는 2차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전력 생산에는 원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가정이나 공장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배전과 각 발전기의 출력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계통 운영이 필요하다. 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35년 추정 전력 생산 비용은 500조 원이 넘는다.
현 정부는 원전과 석탄화력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저탄소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비용’이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전기요금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전기요금 인상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기요금은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의 바로미터 중 하나다. 정부든, 정치인이든 섣불리 요금 인상을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10월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는 2015년 원전 축소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한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전환 관련법’을 제정했다. 이를 위해 9개월간 공론화를 진행했다. 필자는 “에너지 정책 수립에 공론화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했다.
그렇다. 기후변화 대응의 모범국인 프랑스에서도 공론화 과정은 힘들었고, 전기요금은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프랑스 총리는 무리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 정부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후변화센터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기요금 인상을 수용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가격’만이 아니다. 형평성 공평성에 대한 인식, 개인의 가치관,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도 등 주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부당하다고 느끼면 단돈 100원도 더 낼 수 없지만, 합당하다고 여기면 2000원, 3000원 인상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기요금 인상에 왜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지 그 근원적인 이유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핵심은 비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불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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