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속 혈관은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있다. 노후화된 혈관은 당연히 막히거나 터질 위험이 높고, 발병시 돌연사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암처럼 조기검진과 관리가 필요한 위험한 질환이라 생각지 않는다. 뇌에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복잡하게 얽혀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평생 신체장애도 겪는 무서운 질병이다. 특히 추위와 큰 일교차로 혈압 관리가 필요한 겨울부터 초봄까지는 뇌혈관이 터지는 위험성이 높아지므로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뇌동맥류’ 환자별 적절한 치료법과 시기 따져봐야
‘뇌동맥류’는 뇌 속의 시한폭탄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뇌혈관 질환이다. 머릿속 동맥혈관의 일부가 풍선 또는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부풀어 오른 풍선이 얇아지듯 혈관벽이 얇아져 빠르게 흐르는 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지면 ‘파열 뇌동맥류’로 출혈이 일어나 응급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활발한 건강검진덕분에 터지기 전인 ‘비파열 뇌동맥류’에서 발견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터지지 않은 뇌동맥류의 혈류를 차단하기 위한 치료는 두 가지다. 머리를 열고 볼록해진 혈관을 클립으로 집어 묶는 수술인 ‘클립결찰술’과 뇌동맥류에 1mm 이하의 얇은 코일을 채워서 구멍을 막는 시술인 ‘코일색전술’이다.
뇌동맥류를 클립으로 집어 묶는 ‘클립결찰술’
환자들은 머릿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병이 생겼다고 하니 겁을 내고 당장 치료를 받고 싶어 하지만, 비파열 뇌동맥류를 발견했다고 모두 당장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면밀한 검진과 분석을 통해 치료 방법을 정하는 게 적절하다.
신경외과 뇌혈관 전문의, 영상의학과 뇌혈관중재치료 전문의, 신경과 뇌졸중 전문의, 재활의학과 전문의들로 구성된 고대 구로병원 뇌혈관집중치료팀은 매주 회의를 통해 환자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뇌동맥류의 위치, 크기, 모양 등을 보고 함께 논의해 경과관찰을 할지, 치료가 필요하다면 수술과 뇌혈관중재시술 중 무엇이 적합할지 등을 정해 환자가 가장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수술과 시술에는 확실한 장단점이 있다. 뇌를 열어야 하는 부담감에 대다수 회복이 빠른 시술을 선호하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진 점을 고려하면 젊은 환자들은 특히 내구성 좋은 수술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미니 개두술로 눈썹 또는 관자놀이에 3cm 이하의 구멍을 통해 수술이 가능해져 과거 뇌동맥류 수술에 비해 수술시간은 반으로 줄고 입원기간 또한 줄일 수 있다.
권택현 고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작은 구멍으로 수술을 한다고 해서 보이는 게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며 “기술 발달로 시야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미니 개두술로 진행 중 위험한 경우 전체 머리를 여는 것도 가능하나 그동안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미세 코일로 뇌동맥류를 채우는 ‘코일색전술’
하지만 최대한 머리를 열지 않고 막을 수 있다면 코일색전술을 권장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비파열 뇌동맥류 환자 1만4781명 중 코일색전술 시술 환자가 9146명으로 60% 이상이 시술을 택하고 있다. 우선 고령 환자가 많기 때문에 수술보다 간편한 시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고 점차 시술방법도 발전하며 재발률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상일 고대 구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어떤 뇌동맥류가 파열 위험이 높은지, 여러 개의 뇌동맥류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지 조사하기 위한 고해상도 뇌혈관벽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첨단 진단 시스템을 일찍부터 도입해 임상에 적용하는 등 발병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고 코일색전술 치료 효과도 더욱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수술과 시술을 동시에 시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코일색전술로 최대한 뇌동맥류를 막은 후 수술을 하면 출혈도 적고 회복도 빠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공이 다른 전문의들의 협진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 고대 구로병원 뇌혈관집중치료팀은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찾고 꼭 해야 할 치료만 하는 다학제진료가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 손목동맥을 통한 뇌혈관조영술로 당일 퇴원 가능
또한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새로운 치료에도 앞장서고 있다. 1차적으로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MRI 검사결과 뇌동맥류가 의심되는 경우 확진을 위해 뇌혈관조영술은 필수적이다. 뇌혈관조영술은 뇌혈관에 조영제를 주입 후 X선을 촬영해 뇌혈관의 모양이나 굵기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다. 주로 허벅지 피부를 5mm 이내로 절개해 혈관 속의 도관을 넣어 검사한다.
검사 후 지혈을 위해 4∼6시간 동안은 걸을 수 없어 당일 퇴원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손목을 통해 검사를 진행하면 바로 걸을 수 있어 당일 퇴원이 가능하고 지혈을 위한 장치도 훨씬 저렴하다.
윤원기 고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2007년부터 손목동맥을 통한 뇌혈관조영술을 1000건 이상 시행했지만 부작용은 미미했다”며 “뇌혈관조영술은 환자의 입원 기간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시술”이라고 말했다.
뇌동맥류를 3D로 재구성해 파열 위험도 예측
진료뿐 아니라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연구도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풍선 같은 뇌동맥류 중에 반복적으로 피가 부딪히는 부분은 혈관벽이 더욱 얇아지고 약해지기 마련이다.
최근 연구 중인 뇌동맥류의 모양과 위치를 3D로 재구성해 피의 흐름을 시뮬레이션 함으로써 어느 부분이 터질 위험이 높은지 예측하는 ‘다이내믹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뇌동맥류의 파열 위험도를 조기 예측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뇌동정맥기형, 수술 없이 감마나이프로 완벽 제거
뇌동맥류와 함께 머릿속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뇌동정맥 기형’이다. 혈관에 꽈리가 생긴 뇌동맥류와 달리 뇌동정맥기형은 선천성 질환으로 뇌의 혈관인 동맥과 정맥 사이에 안전장치인 모세혈관이 형성되지 않은 병이다. 크기는 지름이 6cm이상까지 다양하며 뇌의 표면부터 깊은 곳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뇌동정맥기형은 동맥의 높은 혈압이 낮은 정맥으로 안전장치 없이 바로 전달되면서 뇌출혈 발생 위험이 높다. 환자의 50%가 뇌출혈 증상으로 병원에 내원하며, 발작이나 두통의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또한 갑자기 멍해지거나 마비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심한 경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몸을 흔드는 전신 발작을 일으킨다. 두통의 경우 흔히 편두통이나 긴장성 두통의 양상으로 나타나므로 반복적인 심한 두통이 있는 경우 반드시 병원을 찾아 MRI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도 뇌동정맥기형은 제거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개두술로 기형혈관을 잘라내기도 하지만 수술 없이도 첨단 감마나이프라는 방사선 수술로 말끔하게 치료가 가능하고, 하루 입원으로 가능할 만큼 회복도 빨라 환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절개 및 전신 마취가 없어 감염이나 뇌 조직 손상 등의 합병증 발생 확률이 현저히 낮으며, 수술적 접근이 어려운 위험 부위의 치료도 가능해졌다.
김종현 고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감마나이프는 정상 뇌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고선량의 감마선을 기형혈관에 집중시켜 서서히 혈관을 막는 치료다. 단 1회의 치료로 완치가 되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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