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구조생물학자 김성호 교수
“게놈 해독기술, 한국 경쟁력 확보… 빅데이터-AI접목해 암 본격 연구”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여든 살 노학자의 손은 힘이 넘쳤다. 이달 13일 인천 송도에서 만난 세계적 구조생물학자 김성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명예교수(81·사진).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그의 눈빛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김 교수는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간 한국 출신 과학자’로 불린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원 시절이던 1973년 생명현상의 핵심인 단백질 합성 과정에 관여하는 생체물질 ‘운반RNA(tRNA)’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 명성을 얻었다. 암 관련 중요 단백질을 규명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국국립과학원 회원에 뽑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게놈 해독, 이를 통한 암 극복을 위해 한국에 왔다. 김 교수는 “한국인 1만 명의 게놈 데이터를 수집해 암 발병 가능성을 분석하는 ‘인천 1만 명 게놈 프로젝트’(가칭)를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기반을 둔 생명과학기업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및 인천대와 공동으로 게놈 빅데이터와 AI를 결합한 새로운 암 연구에 합의했다.
생체구조 분야의 전문가인 김 교수가 새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 그는 “게놈 해독은 아직 국가 간 격차가 크지 않다”며 “한국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원천 기술을 이미 개발해 둔 상태다. AI와 게놈 해독 기술로 9000명의 미국 백인 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뒤, 주요 암 20종의 발병 원인을 각각 유전적 원인과 후천적 원인(생활습관 및 환경)으로 분류해 1월 말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궁경부암이나 유방암은 후천적 원인에 의해, 부신수질 등에 발생하는 암인 갈색세포종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 그는 “이런 정보를 알면 게놈 해독으로 자신이 어떤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알 수 있다”며 “절제수술 등 예방조치를 취할지, 생활습관을 개선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한국에 맞는 게놈 데이터가 확보돼야 한다. 김 교수는 이민섭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대표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의 질병정보와 게놈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김 교수는 게놈 해독학과 AI라는 낯선 분야에 익숙하기 위해 여든 나이에 손자뻘 학생들과 UC버클리 컴퓨터과학과에서 새로 공부하고 있다. 그는 “호기심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른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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