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남극 바다에도, 크레바스(얼음이 갈라져 생긴 틈)에도 빠져봤다. 눈구덩이에 파묻힌 중장비를 끌어내느라 죽을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한 발씩 남극 땅을 개척해 가는 게 내 삶이 됐다.”
연평균 기온 영하 34도.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전진해 온 대한민국 남극탐사단의 요즘 목표는 남극점까지 도달할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남극점으로 즉시 접근할 수 있는 ‘제3의 남극기지’ 건설을 위해 한국만의 ‘코리안루트(K-루트)’를 뚫겠다는 것.
한국의 남극 도전은 올해로 꼭 30년. 1988년 2월 17일 서울에서 1만7249km 떨어진 남극 대륙 서북쪽 사우스셰틀랜드제도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건립한 이후부터다. 지금은 제2기지(장보고과학기지)를 짓고, 다시 남극점까지 바라보고 있어 남극에 관한 한 선도 국가 자리도 넘보게 됐다. 이는 영하 수십 도의 극한 환경을 뚫고 한 발씩 전진해온 탐사진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대한민국 남극 개척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이종익 극지연구소 K-루트사업단장(55)에게 그간의 역사를 들어봤다. 최근 인천 극지연구소에서 이 단장을 만났다.
―남극을 얼마나 많이 다녀왔나.
“모두 25번이다. 극지연구소에 근무한 지 올해로 26년째니 꼭 한 해(1999년)만 빼고 매년 남극에 갔다. 1992년부터 시작해 1997년 월동대원으로 1년을 남극에 체류하기도 했다. 주로 매년 ‘남극의 여름’, 즉 우리나라의 겨울마다 남극을 찾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두 달(10∼12월) 정도 다녀왔다.”
―‘남극의 여름’에만 남극에 가는 까닭이 있을 것 같다.
“내 임무는 남극에서도 낯선 지역을 탐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날씨가 받쳐주는 계절에 가야 한다. 남극은 여름이어도 영하 30도다. 하지만 겨울에는 영하 50∼60도까지도 내려간다. 물론 여름에도 그 정도로 추운 날이 많지만 겨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춥다. 10년 정도는 남극에서 운석을 찾으러 다녔고 2010년을 전후해서는 장보고기지 건설 현장 답사도 담당했다. 지금은 제3기지 건립에 필요한 육상 경로를 개척하는 ‘코리안루트(K-루트)’ 사업을 맡고 있다. 제3기지에서는 남극점에 접근할 수 있다. 남극점은 지구의 가장 남쪽으로, 남극점에선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도 북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남극 탐사 전문가로 거듭나기까지는 남극 운석 연구가 단초가 된 듯하다. 초반에 남극 운석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이 궁금하다.
“나는 지질학을 전공했다. 돌과 흙을 찾아야 연구를 할 수 있다. 특히 남극은 운석의 보고다. 남극은 넓고 흰 눈으로 덮여 있어 운석을 발견하기 쉽다. 수십 kg짜리 초대형 운석부터 시작해 달에서 떨어져 나와 지구로 들어온 ‘달 운석’ 등 진귀한 운석을 발견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남극 대륙 주변인 세종기지를 둘러싼 여러 섬을 고무보트로 옮겨 다니며 지질 조사를 했다. 조악한 고무보트로 바다를 자주 건너야 하니 위험했다. 계속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2006년부터는 남극 대륙으로 건너가 ‘운석 탐사’에 나섰다. 남극점 서편 널따란 평지인 ‘패트리엇힐’ 지역은 남극점에 가까워 여름에도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진다. 이런 곳에서 남극 얼음 벌판을 헤매며 운석을 찾아다녔다. 당시만 해도 남극 대륙에 발을 디뎌본 사람이 드물었다. 운석 연구를 통해 국내 과학자 중 최초로 남극 대륙 답사를 시작했다.”
―극한 환경에서 탐사를 다니는 일인데, 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손을 펴 보이며) 지난달 남극에서 들어왔는데도 아직 손가락에 동상이 남아 있다.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고무보트가 좌초돼 얼음장과 다름없는 남극 바다에 빠진 적도 있다. 주변 섬에 올라가 무전으로 구조를 요청했는데, 세종기지에서 보내준 구조팀마저 고무보트가 뒤집혀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근처에 있던 스페인 해군이 큰 배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얼어 죽었을 것이다.
운석 탐사 때도 마찬가지다. 초속 18m의 태풍과 비슷한 바람이 심심찮게 분다. 깊은 크레바스에 빠져 3시간 만에 기어 나온 적도 있다. 탐사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당시에는 큰 부담이었다. 남극에선 유류비가 L당 2만 원이나 된다. 수송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스노모빌(설상 오토바이) 등의 탐사장비의 연료소비효율(연비)은 L당 2km도 안 나온다. 그러니 유류비로 매년 억대 비용을 써야 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궁금하다. 안전한 내근직도 있었을 텐데….
“운석은 우주에서 떨어져 들어온 돌이니 과학적인 가치가 크다. 당시 남극에서 운석을 연구하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 중국, 이탈리아 등 4개국밖에 없었다. 여기에 끼어든다면 빠른 시간 안에 ‘남극 연구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6년 5개, 2007년 18개, 2008년 8개를 찾는 등의 성과를 냈다. 지금은 장보고기지에 별도의 운석 탐사팀이 활약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1000개 이상을 확보했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남극에서 운석 샘플 2만 개 정도를 찾아냈다. 여전히 우리도 더 많은 탐사가 필요하다.”
―지금은 운석 연구에서 손을 뗐다고 들었다.
“‘K-루트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길이 생겨야 기지를 지을 수 있고 물자를 보급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처음으로 얼음길을 밟으며 안전한 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남극점까지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기지를 갖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공동 기지를 짓고 루트를 확보했다. 우리도 남극점까지 오고갈 독자적인 루트를 만들어야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남극을 흔히 ‘하얀 사막’이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고 발밑이 어떻게 돼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어디서 갑자기 밑으로 푹 꺼져 들어갈지 모른다. 연구를 하면서 얼음 위에서 길을 개척하는 일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 봤고, 그 이후부터는 남극에서 새 루트를 개척하는 일을 내 주된 임무로 여기고 있다.”
―현 장보고기지도 그런 과정을 거쳐 위치를 선정한 것인가.
“장보고기지는 조금 다르다. 원활한 보급을 받기 위해 해안에 지었다.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 해안을 따라 다니다 적합해 보이는 곳이 보이면 내려가서 땅을 딛고 주변 환경을 조사한다. 하지만 K-루트는 사람이 육상에서 계속 전진해 나아가며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K-루트 개척 상황은 어떤가.
“지난겨울(남극의 여름)에 적잖은 진척이 있었다. 장보고기지에서 남극점까지 도달하는 길을 가늠해보면 3000km 정도 된다. 2020년까지 중간 1500km 지점까지 개척하는 것이 당면 목표다. 이곳에 세 번째 남극기지가 들어선다. 이 기지에서 남극점까지의 거리는 다시 1500km 정도 되지만 얼음이 대체로 안정적인 상태여서 남극점까지 비교적 빠르게 갈 수 있다. 결국 초기 1500km 개척이 중요한데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어 매우 위험한 루트다. 그래서 매년 조금씩 이동하며 안전을 확인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지금은 1500km 중 300km까지 나아갔다. 올해부터는 호수 위에 얼음이 덮인 ‘빙저호’ 지역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그 위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매우 빠르게 진척될 것이다.”
―꼭 육상로를 개척해야 하나. 비행기로 물자를 수송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나.
“보급로가 없으면 기지 운영이 불가능하다. 남극에서 쓸 수 있는 비행기는 14인승 정도의 중소형인데 여기에 짐을 가득 실어봐야 1000kg 정도다. 이걸로는 유류 공급도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은 남극점 바로 옆에 ‘아문센-스콧’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초반에는 남극 서남쪽에 지은 대형기지 ‘맥머도’에서 군사용 대형 수송기로 물자를 실어 날랐다. 하지만 결국 운영 비용이 감당이 안 돼 육상 보급로를 다시 개척했다.”
―극한 지역에서 야외생활을 하는 셈이다. 어떤 생활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운석 탐사를 다니던 시절엔 정말로 텐트를 치고 잤다. 장보고기지가 없던 시절이라 큰 장비를 가지고 들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노모빌을 임차해 타고 다니다가 적당한 곳이 보이면 자리를 잡는다. 눈보라가 몰아치면 좁은 텐트 속에서 꿈쩍도 못하는 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요즘엔 장비가 좋아져 한결 부담이 줄었다. 최근에는 컨테이너 밑에 썰매를 달아 만든 ‘설상차’를 끌고 다닌다. 내부를 실내처럼 꾸며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하지만 대소변 처리는 예외다. 여전히 제일 고역이다. 남극 환경을 오염시키면 안 되니 대소변을 구분해 모두 모아서 장보고기지까지 갖고 와야 한다. 다음 겨울부터는 캐러밴(캠핑용 트레일러)을 특수 제작해 갈 예정이라 여러모로 편리해질 것이다. 기업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의상이나 헬멧 등은 모두 국내 기업이 보내준다. 현대자동차도 싼타페를 개조한 특수 설상차 3대를 마련해줬다. 이 차량은 다음 겨울부터 활용할 예정이라 기동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탐사 도중에는 어떻게 식사하나. 음식 조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빵이나 과자 등으로 때울 것 같다며 걱정해 주시는 분이 많은데 현지에선 의외로 잘 챙겨 먹는다. 한식 위주로 식사하고 밤참으로 떡볶이 같은 조리식품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냉동 보관이 비결이다. 계약한 국내 식당에서 조리한 찌개, 국, 고기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한 끼분씩 포장해 얼려서 가지고 간다. 남극에선 썰매에 싣고 다니기만 하면 자연히 냉동 상태가 유지되니 보관도 간편하다. 조리는 컨테이너 안에 전기가 들어오니 전기조리기로 데워 먹는다. 밥을 지을 때도 한국에서 쓰는 전기밥솥을 그대로 사용한다. 단, 물은 남극의 눈을 퍼서 녹여 쓴다.”
―탐사 중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은 없는가.
“탐사단을 위한 의료 시스템 개선이다. 앞으로 장보고기지에서 점점 더 먼 곳까지 탐사를 가야 할 텐데 의료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환자 호송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응급의료 역량이 뛰어난 의사가 함께 가줬으면 한다. 경험 많은 의사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극으로 와 주기는 쉽지 않다. 극지의학회 등 관련 학계 전문가들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 남극 탐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다음 목표가 있나.
“남극과 함께 살아온 인생이지만 아직 ‘남극점’에는 못 가봤다.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한 번에 남극점에 쉽게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일부러 미뤄뒀다. 과학적인 탐사 목적을 가지고 조금씩 전진해 남극점에 다다르는 것이 내 평생의 버킷리스트(꼭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K-루트와 관련해 꼭 이뤄야 할 다른 큰일도 하나 있다. 남극 제3기지 후보지 인근에서 3000m 깊이의 얼음 구멍을 뚫고 100만 년 동안 남극에 쌓였던 얼음을 꺼내 연구해 보는 것이다. 매년 겨울(남극의 여름)마다 이곳을 찾아 1년에 500m씩 파들어 간다고 해도 6, 7년이 걸린다.
앞으로 내 정년은 10년 정도 남았다. 그 안에 K-루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남극에서 보낸 내 일생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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