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이면 ‘베스트 공감 댓글’ 만들어… 여론조작 얼마든지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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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댓글, 조작된 여론… 괴물이 자라났다


온라인에선 누구나 겸양을 벗고 제 목소리를 낸다. 특히 기사의 댓글난에선 목소리들의 정면 승부가 펼쳐진다. 잘만 돌아가면 숙의(熟議)가 가능한 공간이다. 댓글 기능도 이런 기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댓글난은 문제아로 자랐다. 성숙한 토론보다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정직하게 의견을 개진하기보다 ‘좌표’를 찍고 ‘화력’을 집중하며 여론 몰이를 해댔다. 댓글의 대표성이 짙어지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도 등장했다. 십알단, 국가정보원 댓글 개입,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은 모두 이 연장선에서 탄생한 괴물들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검색이나 뉴스 수집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전 세계 평균을 2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여기에 포털 댓글에 영향을 받는 동조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이 사실상 특정 포털의 손아귀에 놓인 것이다.

‘포털 댓글=여론’이라는 착시(錯視) 현상 속에 댓글 전쟁도 과격해졌다. 여야를 지지하는 정치 팬덤들이 민감한 사안마다 몰려다니며 여론전을 벌였다. 온라인 정치 브로커도 등장했다. 선거철이면 정치권에는 댓글 블로그 카페 등으로 불리한 여론을 뒤집어 주겠다는 어둠의 제안이 판친다고 한다. 드루킹 사건은 숱한 댓글 조작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뿐 아니다.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온라인 세계는 연출됐다. 청정 구역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언더마케팅은 10여 년 전 본격화됐다. 시작은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퍼뜨리는 ‘바이럴(viral) 마케팅’. 후기를 가장해 제품을 홍보하는 바이럴 마케팅이 콘텐츠를 조작하는 언더마케팅으로 변질됐다.


단순한 홍보를 넘어 여론 조작의 장이 돼버린 포털을 이대로 둬도 되는 걸까. 언더마케팅은 누가 어떻게 하며 어디까지 가능할까. 현장에서 활동하는 언더마케터의 도움을 받아 블로그와 기사 댓글을 직접 조작해 봤다.

○ “순위를 다 만들어 드립니다”

두 사람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글을 블로그에 쓴다. 그런 다음 동일한 키워드로 검색을 한다. 결과가 어떨까? 상식적으로 검색 순위가 비슷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느리도 모르는’ 네이버의 알고리즘에 따라 검색 순서가 뒤죽박죽 섞이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극구 부인하지만 언더마케터들 사이에서 ‘아이디(ID) 등급설’은 정설로 통한다. 일정 기간 활발히 글을 올린 이들은 검색 시 상단에 노출되도록 설계됐다는 거다. 검색에 쉽게 노출되는 아이디는 ‘최적화 아이디’, 이 아이디에 딸린 블로그는 ‘최적화 블로그’다.

4, 5년 전만 해도 언더마케팅 시장에서 최적화 아이디는 개당 150만∼200만 원에 거래됐다. 최근엔 가격이 1000만 원 선으로 껑충 뛰었다. 2년 전 최적화 알고리즘을 네이버가 무력화하면서 최적화 아이디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기존의 아이디는 살아 있다.

누군가가 ‘최적화 아이디’로 검색하면 언더마케팅 광고가 쭉 뜰 거라는 ‘팁’을 줬다. 직접 댓글 조작을 해보기 전에 시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최적화 아이디를 치자 관련 글이 떴다. 한데 검색된 질문에 달린 답변은 1, 2명의 네임카드로 도배가 돼 있었다. 언더마케팅을 하는 업자들이었다.

그중 한 곳에 전화해 “병원 광고를 하고 싶다”고 했다. A 씨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블로그 카페 지식인 상위 노출’이라고 소개했다. 원하는 키워드로 검색할 시 상단에 글이 노출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부산의 피부과를 홍보하고 싶다고 하자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다.

“병원 키워드는 제일 ‘잡기’ 힘들어요. 경쟁이 ‘어마무시’하거든요. 네이버 단속도 특히 심하고요. 한데 저는 다 잡아 드립니다. 그냥 ‘피부과’보다 ‘부산 여드름’ ‘부산 피부과’ ‘부산 대상포진’ 등으로 세분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가격은 노출 보장 기간과 건수에 따라 다르다. 한 달간 1∼5위 노출 조건에 건당 40만∼120만 원. 5건이면 매달 200만∼6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가짜 콘텐츠라 좀 께름칙하다. 불법적 요소는 없느냐”고 하자 그는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게 0.000001%도 없다”고 단언했다. 중국에서 파는 해킹 아이디가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아이디로 작업하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 “댓글 조작이 제일 쉬웠어요”

“컴맹도 문제없습니다.”

댓글 조작법을 알려주기로 한 언더마케터 B 씨가 자신했다. 컴퓨터 실력이 형편없어도 걱정 말라고 했다. 그는 “프로그램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쓰면 누구나 댓글 조작을 할 수 있다”며 “만나는 건 부담스럽고 원격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19일 오전 10시, B 씨가 기자의 노트북에 들어왔다. 도전 과제는 ‘블로그 댓글 조작’과 ‘기사 댓글 조작’. 먼저 ‘난도 하’인 블로그 댓글부터 달아보기로 했다. B 씨는 Z프로그램(가칭)을 추천했다. 유치원생도 작업할 만큼 간편한 데다 걸릴 염려도 적다고 했다.

Z프로그램을 클릭하자 견적이 떴다. 1만 원에 300명의 아이디로 댓글 300개와 공감 100개, 스크랩 100번을 제공한다고 했다. 50만 원으론 검색 2만1750번, 댓글 2만1750번, 공감 7250개가 가능했다. 한데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았다. B 씨는 “(드루킹 사건으로) 시기가 흉흉해 내려받지 못하도록 막아둔 것 같다”며 본인의 Z프로그램을 불러왔다.

Z프로그램 원리는 악성코드를 심은 ‘좀비PC’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 악성코드 대신 프로그램을 사용 중인 이들의 아이디를 사용해 댓글을 달고 공감 수를 올린다. B 씨는 “사용자가 많을수록 작동이 잘된다. 기자의 아이디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서 댓글을 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B 씨가 기자의 블로그에 ‘나는 나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Z프로그램에선 글의 인터넷접속주소(URL)를 입력한 뒤 검색 키워드난에 ‘나는’이라고 적었다. 검색은 20회, 댓글은 10개, 스크랩은 2회로 잡았다. 그런 다음 원하는 댓글 10개를 적었다. “다 됐습니다. 이제 기다리면 됩니다.”

10분쯤 지나자 블로그 글에 댓글 8개가 달려 있었다. 빈칸 채우기 몇 번으로 댓글 조작을 마친 것이다. 이렇게 하루 수십 개의 댓글과 공감을 받으면 며칠 후 해당 글은 포털사이트 상단에 노출된다.

Z프로그램 외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좋아요’ 달기, 인스타그램 조회 수 높이기 등 다양한 용도의 프로그램이 있다. 전문 업자들은 보통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쓴다. 네이버 방어막 최대치에 접근한 프로그램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B 씨는 “네이버가 Z프로그램의 원리를 파악해 페널티를 가하면 연루 계정이 모두 저품질 계정이 된다. 그러면 관련 블로그가 모두 검색창에서 사라지는 ‘블로그 학살’이 일어난다”며 “그런 위험을 피하려 자체 프로그램을 쓴다”고 설명했다.

개발자에게 프로그램을 주문하기도 한다. 아이디와 인터넷주소(IP주소) 변경, 스크랩, 스팸 문자, 매크로 속도 등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단가가 높아진다. 전직 언더마케터 C 씨는 “장판이냐, 대리석이냐에 따라 인테리어 비용이 달라지듯 프로그램 견적도 제각각이다. 속도와 성능이 뛰어난 프로그램은 억대를 호가한다”고 귀띔했다.

○ 매크로 잘못은 아니지만…

한 공공기관에 근무 중인 장모 씨(34). 지난달 한 포털에서 기관 관련 기사를 읽던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듯한 내용의 댓글 100여 개가 순식간에 달린 것. 기사를 지지한다는 뜻의 ‘공감’ 수도 갑자기 늘어났다. 그는 “당시 댓글을 훑으면서 기관과 소송 중인 누군가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댓글 조작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민주당원들의 댓글 조작 파문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매크로는 반복되는 작업을 자동으로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단순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각종 언더마케팅과 여론 조작에 악용되면서 체면을 구기고 있다.

B 씨는 “매크로는 초등학생들이 게임할 때 흔히 쓰는 쉬운 프로그램이다. 공개된 스크립트에 따라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온라인 거래 가격은 10만∼100만 원이다.

기사 댓글 조작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 X(가칭)를 깔았다. 컴퓨터가 사람의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녹화 매크로 프로그램이다. 네이버 기사를 골라 ‘테스트’라는 댓글을 단 뒤 내용을 복사해 같은 댓글을 또 달았다. 공감도 눌렀다. 이 동작을 마친 뒤 X를 실행하고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잠시 후 커서가 저절로 댓글을 달고 공감을 눌렀다.

댓글 조작은 아이디와 IP주소만 충분히 확보하면 식은 죽 먹기다. 매크로 없이 10명이서 수작업으로도 댓글 1000개쯤은 후딱 만든다고 했다. B 씨는 “댓글 하나를 복사하는 데 10초 남짓이다. 컴퓨터 수십 대를 연결해 계속 클릭만 하면 5∼10분 만에 ‘베스트 공감 댓글’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아이디는 개당 300∼1000원에 얼마든지 구한다.

전문 업자들은 컴퓨터나 대포폰 수십 대를 연결한 작업방에서 일한다. IP주소를 우회하면 되는데 굳이 작업방을 두는 이유는 뭘까. C 씨는 “포털에서 불법으로 개인 PC 정보를 읽어간다는 의혹이 있다. 한 컴퓨터에서 여러 아이디와 IP주소를 사용하면 꼬리를 밟힐 우려가 있어 작업방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여론조작#댓글#포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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