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용 입체기동 로봇 ‘라오라’
생산기술연구원, 세계 최초로 개발… 관절 38개 사람 동작 대부분 흉내내
인간이 못하는 공중 ‘슬로 모션’ 가능, “연극의 한계 극복하는 계기될 것”
연극배우는 카메라가 아니라 관객 앞에 선다. 무대 위에서 뛰고 달리고, 춤추고 노래한다.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연극만이 가진 현장감이다. 하지만 특수효과는 영화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영화에선 초능력자가 건물 외벽을 기어 다니고, 요정이 하늘을 유유자적 날아다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연극에선 이런 연출을 하려면 적잖은 특수장비를 동원해야 하고, 특수장비를 동원하더라도 시각적인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연극 연출의 한계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로봇 연극배우’를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 김진영 문화기술그룹장 팀은 중력과 관계없이 자연스러운 입체기동(立體機動)을 할 수 있는 연극용 로봇 시스템 ‘라오라(RAoRA)’를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연극용 입체기동 로봇을 개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다.
라오라는 산업용 로봇팔 끝에 두 팔과 다리가 달린 ‘인간형 로봇배우’를 붙여서 만들었다. 산업용 로봇팔은 독일 로봇 기업 ‘쿠카’에서 개발한 ‘KR360-3’이란 산업용 모델을 이용했다. 여기에 영국이 개발한 상반신 인간형 로봇 ‘로보데스피안’에 생기원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하반신을 연결해 한 대의 완전한 인간형 로봇배우로 다시금 만들었다. 일본의 아시모, 한국의 휴보 등 다양한 인간형 로봇을 분석해 연극에 적합한 형태로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김진영 그룹장은 “로봇배우 체중은 고성능 로봇팔이 항상 떠받들고 있기 때문에 보행 동작을 할 때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며 “실제 보행 기능보다는 최대한 역동적인 몸짓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 로봇은 약 1년간 2억4000만 원을 투자해 개발했다. 본래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최한 ‘혁신성장동력 챌린지 데모데이’ 행사에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날씨, 준비 상황 부족 등을 이유로 유보됐다. 이후 관련 기술을 가다듬는 한편, 현재 실용화 기술을 추가 연구 중이다.
라오라 개발 과정에선 산업용 로봇팔과 로봇배우, 두 대의 로봇을 완벽하게 연결하고 제어하는 일이 가장 까다로웠다. 공중에서 움직이는 입체기동 과정까지 고려하면 제어 소프트웨어를 짜는 데 2, 3배 이상의 수고가 들어갔다.
덕분에 라오라는 땅에 내려서서, 혹은 공중에 뜨거나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도 모든 동작을 연기할 수 있다. 로봇배우 관절은 모두 38개로, 사람의 동작 대부분을 흉내 낼 수 있다. 연출에 따라 천장을 지면 삼아 거꾸로 매달려 걷는 것이나 구름 속을 날아다니며 노래 부르는 것도 가능할 만큼 전천후 입체기동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극에선 불가능했던, 공중동작을 ‘슬로 모션’으로 연출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이런 라오라를 뮤지컬 등 역동적인 연출이 필요한 다양한 무대에 적용한다면 기존 문화산업의 한계를 한층 더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 배우와 함께 출연하도록 연출하거나, 장면에 따라 대역 등으로 활용할 경우 무대 연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김 그룹장은 라오라 개발로 세계 연극문화에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로봇배우의 입체기동에 필요한 산업용 로봇팔은 실제 무대에선 무대의 배경색이나 조명 등을 이용하면 관객들 눈에 잘 보이지 않도록 연출할 수 있다. 김 그룹장은 “입체기동용 로봇팔을 애써서감추기보다는 반대로 한층 두드러지게 표현하면서 거기에 적합한 각본을 짠다면 로봇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일 생기원 원장은 “로봇 기술이라고 하면 산업이나 군사용을 우선 떠올리지만, 문화 분야와 접목한다면 인간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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