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암’ 최적 수술법 찾고… 동위원소로 암세포 파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9일 03시 00분


[토요기획]베스트닥터 <6> 간암

서경석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오른쪽)가 3차원(3D) 복강경을 이용해 간암을 수술하고 있다. 3D 영상을 보기 위해 의료진 모두 특수안경을 쓰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서경석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오른쪽)가 3차원(3D) 복강경을 이용해 간암을 수술하고 있다. 3D 영상을 보기 위해 의료진 모두 특수안경을 쓰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간암의 국내 5년 생존율은 33.6%다. 10만 명당 사망자는 약 23명으로 폐암(35명)에 이어 두 번째로 사망률이 높다. 간암 환자를 분석해 보면 약 85%가 만성 B형·C형 간염, 약 10%가 알코올성 간경화에서 비롯됐다. 이런 병에 걸리면 간세포가 지속적으로 손상되다 40대 이후에 간암으로 악화할 수 있다. 대부분 “간 질환이 조금 더 나빠졌나 보다”라며 암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간암을 ‘침묵의 암’이라 부른다.

간암 고위험군(40세 이상의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와 간경화 환자)은 6개월마다 간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혈청 알파태아단백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국가 암 검진 사업을 통해 고위험군 검진비용을 지원한다. 정기검진을 통해 간암을 조기 발견함으로써 사망률을 40% 정도 낮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간암의 경우 이미 간의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어 수술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는 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핵의학과 의사들이 모여 팀 단위로 움직이는 ‘다학제 진료’가 보편화됐다. 베스트닥터 선정 과정에서도 이 점을 엿볼 수 있다. 수도권 5명, 비(非)수도권 1명 등 총 6명에서 3명은 외과, 3명은 내과였다.》

외과 베스트닥터

간암의 외과적 치료는 암에 걸린 간을 절제하는 방법과 외부로부터 간을 이식받는 방법으로 크게 나뉜다.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장기다. 정상적인 간이라면 70%까지 절제할 수 있다. 하지만 암 환자의 간은 많이 손상돼 재생력이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암이 2, 3기를 넘어서면 절제술은 시도할 수 없다. 절제술은 초기 환자, 즉 간암 환자의 15∼20%에게만 시도할 수 있다.

절제술의 대안이 간 이식이다. 보통은 2기까지 가능하다. 절제술의 재발률이 50∼60%인 반면 간 이식의 재발률은 10%로 낮고, 5년 생존율도 80∼90%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뇌사자의 간 이식보다는 가족이나 친척 등으로부터 받는 생체 간 이식의 비율이 더 높다.

복강경 수술이 보편적이다. 전통적인 개복 수술보다 출혈이 적고 회복 시간도 빠르다. 최근에는 3차원 영상을 보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깔끔하게 수술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 내과적 지식 갖춘 최고 외과의사

서경석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58)는 환자뿐 아니라 간 기증자의 90%를 복강경으로 수술한다. 이는 상당히 고난도의 수술에 속한다. 환자의 간은 떼어내면 그만이지만 기증자는 혈관, 담도 등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내과적 의학지식’을 많이 갖춘 외과 의사로 유명하다. 후배들에게도 “수술만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공부하는 외과 의사가 돼라”라고 강조한다. 회원 대부분이 내과 의사인 대한간학회에서 외과 의사로는 유일하게 기획이사를 맡기도 했다. 미국간학회의 유명한 저널 ‘헤파톨로지’에도 논문을 발표했다.

보통 간이식 수술은 간암 2기까지만 시행한다. 재발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게서는 재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 교수는 이런 생물학적 지표(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암의 재발을 줄이는 의약품, 그중에서도 면역 조절과 암세포를 죽이는 세포에 기반을 둔 치료제의 임상시험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스승을 가르친 제자

조재원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61)는 1994년 이 병원이 개원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식외과를 이끌고 있다. 간암 수술과 간 이식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0∼18시간 걸리는 고난도의 수술을 매년 60회 이상 집도한다.

조 교수는 1990년대 초반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배웠다. 2000년에는 미국인 스승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조 교수로부터 생체 간 이식 수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는 뇌사자 간 이식은 많지만 생체 간 이식 사례가 많지 않다. 미국인 스승은 이 수술 노하우를 제자에게 배우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것. 이후로도 조 교수는 이집트, 네팔 등을 다니며 현지에서 간 이식 수술에 성공했고,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의사가 됐다.

요즘 조 교수는 간을 대신할 ‘인공 간’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이와 관련한 의료기기를 개발했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공인도 받았다. 간, 그 자체가 아니라 간세포를 이식하는 ‘셀세러피’도 조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다.

○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수술법 찾아

간은 크게 우엽과 좌엽으로 나눈다. 생체 간 이식을 할 때는 어느 쪽 간이냐에 따라 혈관을 제거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황신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55)는 환자의 해부학적 차이에 맞춰 혈관을 재건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이식 성공률을 크게 높였다. 또 우엽을 절개하기 전에 좌엽을 충분히 키우는 기술도 개발해 수술 대상자의 폭을 넓혔다.

원래 공학도가 꿈이었던 황 교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능하다. 1993년 전공의 시절 서울아산병원의 처방전달시스템(OCS)을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 OCS는 처방전을 전산처리하는, 병원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다. 간 이식 수술에 본격적으로 나선 뒤로는 환자들의 경과를 추적해 분석한 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술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황 교수는 연구하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희귀 종양을 연구한 뒤 국제 저널에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포함해 지금까지 발표한 학술 논문이 무려 340편이 넘는다.

내과 베스트닥터

내과의 전통적인 치료법은 항암 치료다. 항암제는 1세대(화학항암제)→2세대(표적항암제)→3세대(면역항암제)로 발전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쓰던 화학항암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공격해 부작용이 컸다. 2005년 바이엘의 ‘넥사바’가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서 표적항암제 시대를 열었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해 부작용이 적다. 다만 전이된 암에는 잘 듣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건 표적항암제가 진화 중이라는 점. ‘렌비마’ ‘스티바가’ ‘카보메틱스’ 등이 최근 선보여 치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10년대 이후 면역항암제가 등장했다.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증강시켜 암세포를 공격한다. 1, 2세대의 약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약이 미국 BMS의 ‘옵디보’다. 옵디보는 이미 국내에서 피부암(흑색종)과 폐암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고 간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나오고 있다. 병과 싸울 ‘최신 무기’가 넉넉한 셈이다. 항암제 외에 내과 베스트닥터의 다른 치료법을 살펴본다.

○ 세계 최초로 간암 치료법 개발

한광협 연세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64)는 팀을 항상 강조한다. 그동안 자신이 쌓은 업적도 모두 팀으로 이룬 성과라고 공을 돌린다. 한 교수는 “간암 분야에서는 1명의 베스트닥터보다 최고의 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 이런 철학에 따라 한 교수는 1995년 세브란스병원 내에 처음으로 간암전문클리닉을 만들기도 했다.

한 교수는 국내 간암 치료의 선구자이자 1세대 의사로 통한다. 간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한 교수는 세계 최초로 방사성 동위원소 홀미움을 투입해 간암을 파괴하는 치료법을 개발했다. 2007년에는 개인별 데이터를 입력하면 간암 발생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간암예측모델(IPM)을 만들어 국제 특허를 획득했다.

한 교수는 요즘에도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느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대한간암연구회장, 아시아태평양간암연구회 공동의장 및 초대 회장, 대한간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 부작용 줄인 방사성색전술 도입

엄순호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61)는 이 병원 간암 다학제 팀을 이끌며 ‘선장’ 역할을 하고 있다. 매주 1회 모든 진료과의 교수가 모여 다학제 콘퍼런스를 열고,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엄 교수 팀도 여러 치료법을 단독 혹은 병행 시행함으로써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이트륨을 주입해 간암을 치료하는 기술(방사성색전술)을 도입했다. 보통은 화학물질을 투입하는데 이를 고용량의 이트륨으로 바꾼 것. 이를 통해 발열, 통증 같은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높였으며 1회 투여로 치료를 종료할 수 있었다고 엄 교수는 말했다. 고령자에게 좋은 치료법이지만 비용이 상당히 고가라는 게 단점이다.

엄 교수는 환자에게 ‘인간적인 의사’로 통한다. 투병을 게을리하는 환자에겐 호통을 치고 이러다 큰일 난다며 겁도 준다. 상태가 좋아지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비넥타이(보타이)를 매고 다녀 ‘친근한 아저씨’의 느낌을 준다. 대한간암학회장을 지냈다.

○ 정밀 면역 치료 분야 연구

비(非)수도권 베스트닥터로 선정된 조몽 양산부산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62) 또한 팀 단위의 치료를 중요하게 여긴다. 조 교수는 “간암은 여러 치료법이 있으며 환자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만의 치료법이란 것은 없다”라고 강조한다. 여러 전공과의 간암 치료법을 잘 이해해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정하는 것이 내과 의사의 책무라고도 했다.

현재 종양 면역 치료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조 교수는 “앞으로는 환자 개개인의 면역 상태를 파악해 치료하는 정밀 면역치료법이 보편화할 것으로 생각되며 그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2016년 간 독성이 있는 진통제가 간경화 환자 10명 중 4명에게 처방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간 독성이 있는 진통제는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당시 조 교수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재된 간경화 환자 12만5505명의 약 처방 기록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간암#의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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