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51세를 넘기는 순간…나는 페달을 밟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4일 12시 49분


김건수 씨의 초보자 운동법

김건수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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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달을 밟는다. 고로 존재한다.’

올 1월 직업전선에서 은퇴한 김건수 씨(61)는 거의 매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하루라도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듯’ 찝찝하고 영 개운치가 않다. 그에게 자전거는 삶 그 자체다. 한마디로 자전거에 빠져 살고 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프랑스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m, 마라톤까지 제패한 ‘체코의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페크는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생각해야 인간이고, 자토페크는 달려야 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개개의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김 씨는 자전거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다. 김 씨에게 자전거는 남은 인생의 희망이자 꿈이다. “은퇴한 뒤 남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111년만의 폭염이 찾아온 요즘 그는 새벽과 저녁, 그리고 실내에서 운동을 한다. 새벽에는 주거지 근처인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가볍게 달린다. 그리고 낮엔 수영을 하거나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자전거를 탈 때 필요한 보조 운동을 한다. 저녁엔 장거리 사이클 라이딩을 한다. 40~70km를 달린다. ‘젊었을 땐’ 섭씨 35도의 무더위에도 자전거를 탔지만 이젠 그러다 쓰러질 수 있어 새벽이나 저녁에만 탄다. 8월25일 열리는 대관령 국제 힐크라임에 출전하기 위한 준비다. 오르막 산악 25km를 달리는 사이클 대회다.

“그냥 도전하는 것이다. 완주를 위해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기록이나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산악 25km 완주라는 목표를 세우고 하루하루 준비한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이런 과정이 내게 열정과 희망을 불어 넣는다.”

이미 전국 4대강 1857km 완주에 제주 둘레길, 남도 횡단, 일본 규슈 일주 등을 끝냈지만 그는 매번 다른 목표를 정한다. 대관령 국제 힐크라임이 끝나면 한반도 해안 4000km 질주, 그리고 중국 태향산, 몽골, 뉴질랜드, 유럽의 산티아고와 다뉴브강…. 궁극적으론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꿈을 꾸고 있다.

“우리 나이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야 목표가 생기고 희망이 생긴다. 나이는 꿈을 잃는 순간 드는 것이다. 난 자전거를 타면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까 늘 설렌다. 자전거와 함께 매일 상쾌하게 문을 나선다.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자전거는 참 신기하다. 페달을 밟아도 원점으로 돌아가고 바퀴도 돌면 원점이다. 그런데 탄 사람을 새로운 장소로 옮겨준다. 무한한 원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그 매력이 쏠쏠하다.

김건수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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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스포츠에 빠지게 된 배경엔 ‘가족력’이 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고혈압 당뇨 등으로 일찍 세상을 뜬 것이다. “회사에 입사해 막 살다보니 몸아 망가졌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51세에 돌아가신 것을 되새기며 운동하기 시작했다.”

1984년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한 김 씨는 약 3년 뒤부터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먼저 산을 탔고 테니스와 스키 등을 했다. 서울 김포공항 쪽으로 이사를 가면서는 안국동 회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버스를 타면 1시간30분이 걸렸는데 자전거로는 40분밖에 안 걸렸다. 이렇게 운동을 시작했지만 회사일이 바빠 다시 한 10년을 흥청망청 살았다. 과음에 흡연, 그리고 운동부족…. 어느 날 산을 오르는데 호흡이 가빴다. 심폐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가 온 1998년 무렵이었다.

김건수 씨 제공
김건수 씨 제공
경기도 고양 일산 신도시는 운동하기에 좋았다. 호수공원 등 달릴 곳이 많았다. 마라톤을 시작했다. 2000년 동아일보 주최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첫 풀코스를 완주했다. 4시간10분. 그해 11월엔 뉴욕마라톤에도 출전했다. 모 스포츠단체에서 실시한 마라톤 수기 공모에서 당선돼 출전하게 됐다. 당시 3시간38분에 완주했다. 지금까지 풀코스만 10여 차례 완주. 최고 기록은 3시간24분이다.

김건수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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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만 하다보니 지루했다. 2002년부터 철인3종으로 갈아탔다. 수영과 자전거, 마라톤을 하는 철인3종은 아주 재미있었다. 하지만 대회 출전은 많이 하지 않았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수영과 자전거, 마라톤은 계속 즐긴다. 핵심은 자전거다. “한 종목만 하면 지루하다. 크로스트레이닝(교차훈련)을 하면 한결 재미있다. 난 수영과 자전거, 마라톤을 섞어가며 운동한다.”

“난 참 행운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51세를 넘기는 순간 ‘내가 운동을 시작 안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그 때 운동이라는 ‘신의 선물’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수 있다.”

건강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지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진 않는다. 김 씨는 ‘운동을 많이 하니 건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건강을 장담하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는 “내가 날 어떻게 평가하나? 건강을 지향할 뿐이다. ‘나는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그런 언어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죽는다.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운동은 늙어 가는 것에 대한 대체재라고 생각할 뿐이다. 100살을 넘게 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운동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김건수 씨 제공
김건수 씨 제공
솔직히 운동 때문에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2004년 회사를 떠나 막노동 등을 전전하다 프리랜서로 활약했다. 삼성전자 각종 행사 사진을 찍어주며 모 신문사 경기 북부지역 사진기자로도 활약했다. 삼성전자 행사로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 자전거를 가지고 다니며 그 도시의 새벽과 밤을 사진으로 찍었다. 낮에는 행사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새벽과 밤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 도시를 구경할 절호의 기회를 행사 사진 찍는 것으로 놓칠 순 없었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지만 거뜬히 버텨냈던 게 운동을 생활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라톤과 자전거란 두개의 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통해 또 다른 꿈을 꾸고 있고 또 다른 결실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국내와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니면 찍은 사진을 토대로 ‘풍륜(風輪), 사계를 연주하다’란 e-book도 출간했다. 국내외를 누비며 담은 사진들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묶어 시적인 감수성으로 사계(四季)를 풀어냈다. 풍륜은 김 씨가 내건 자신의 ‘별명’이다.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으로 책을 낼 생각이다. “자전거는 문화다. 단순히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만 지킨다면 내 인생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시도 읽고 책도 읽고 이를 사진과 결부시키며 자전거 문화를 만들고 있고 싶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김경제 기자 촬영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김경제 기자 촬영
사실 은퇴한 사람들 대부분 또 다른 생업을 찾아 나선다. 김 씨같이 스포츠에만 매진하는 사람은 드물다. 김 씨는 “이렇게 살기 위해선 좀 미쳐야 한다”고 말했다. 마니아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매일 운동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자전거를 타고 목표로 한 일주를 마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 돈이 들어간다. 이런 투자를 하기 위해선 자기가 하는 행동에 미쳐야 한다. 미치면 길이 보인다.

“운동을 하면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단순 논리로 접근하면 금방 지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를 창출해 내느냐다. 결국 마니아다. 마니아는 삶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지속화 한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다. 마니아는 무시무시한 열정의 집합체다.”

미친 사람들끼리 모이면 더 쉽게 미칠 수 있다. 김 씨는 “자전거 마니아들끼리 밴드(네이버)에서 논다. 목표를 정하고 함께 질주하는 협의를 하고 함께 달리고 즐긴다. 그러면 훨씬 쉽다”고 말했다. 요즘은 밴드 등 인터넷 사이트가 동호회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씨는 10여 명의 골수 ‘사이클 마니아’들과 교류하며 자전거를 즐기고 있다.

“마니아가 되면 ‘돈 때문에 하지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마니아로 가는 길에서 비용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우리가 모든 것을 사치를 할 수는 없다. 한가지만큼은 투자해도 되는 것 아니냐? 어떤 고가의 장비를 갖추면 효율적이면서도 기분도 좋다. 언젠가 세계적인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보면서 ‘어 저선수도 내 자전거를 타네?’라며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선수와 똑같을 수는 없지만 지향점은 같을 수 있다. 난 한양대 겸임교수하며 3년치 강의료 일부를 모아서 고가의 자전거를 샀다. 한 종목에 열정을 가지게 되면 결국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김경제 기자 촬영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김경제 기자 촬영
김 씨는 60세를 넘기면서는 ‘초보자(뉴 비기너·New Beginner)’의 자세로 운동한다. “60세 이상은 새로운 출발이다.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 옛날엔 잘했는데 지금 못한다고 창피해 한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몸은 나이를 먹을수록 쇠퇴한다. 나이와 체력에 따라 적당히 운동해야 한다.”

요즘 김 씨는 자전거 페달을 밟다 힘들면 쉰다. 몸이 피곤하면 그날은 수영이나 체조, 보조 운동만하고 휴식을 취한다. 자전거를 더 즐기기 위해선 회복이 중요하다. “한 때 하루에 자전거로 270km를 달린 적이 있다. 이젠 그렇게 못한다. 전성기는 지났다. 늙어가는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역효과가 난다.”

초보자의 자세로 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자세로, 마라톤과 수영을 처음 하는 기분으로, 힘들면 쉬었다 하면 된다. “90, 100세까지 살 건데 지금 출발해도 충분하다. 성과? 기록? 소용없다. 천천히 가면 된다. 나도 최근 초심의 자세로 다시 시작했다. 이제 나에게는 시간에 관계없이 어디까지 길게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천천히. 길게.”

김 씨는 스포츠를 즐길 때 준비와 계획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운동이나 스포츠를 할 때 ‘이것이나 한번 해볼까’라며 막연하게 도전한다. 그럼 백전백패다. 어떤 스포츠든 그것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전혀 준비 없이 계단을 3개씩 오를 수 있나? 하나씩 오르다보면 힘도 생기고 그게 쌓여야 3개씩 오를 수 있는 법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특히 나이 먹은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즐겨야 오래 즐길 수 있다. 우리 몸, 특히 늙은 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김경제 기자 촬영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김경제 기자 촬영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바이블’ 같은 책을 권했다. 최근 너무 정보가 넘쳐나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정 스포츠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을 보는 게 중요하다. “난 마라톤을 시작하며 제프 겔러웨이의 ‘마라톤’이란 책을 수 십 번 읽었다. 마라톤 초보가 풀코스 완주하기까지 훈련법이 잘 설명돼 있다. 그리고 그 책을 따라 노력했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자신이 믿고 따를 책이 꼭 필요하다.”

김 씨는 다시 강조했다. “건강하게 100세를 향해 가는 길에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는 “나는 날마다 기도하듯 운동 한다. 기도하듯 흘리는 땀은 나를 즐겁게 한다”고 말했다.



61세 김건수 씨의 ‘초보자(뉴 비기너·New Beginner) 운동법

1. 과거 아무리 운동을 잘했어도 초보자의 자세로 운동에 임한다.

2. 몸이 힘들면 쉬어라. 회복해야 더 잘 즐길 수 있다.

3. 성과? 기록? 천천히 가야 오래 즐긴다.

4.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면 더 즐겁다.(체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고 목표를 정해 정진하자)

5. 즐기려는 스포츠를 잘 정리한 책을 ’바이블‘로 삼고 공부하자.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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