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충남 서천군 한산면 한길영농조합법인 표고버섯 톱밥 배지(培地·종균이나 작은 식물을 증식하는 영양원) 배양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바깥과는 달리 비교적 시원한 배양실에서 이성희 대표(37)는 수시로 스마트팜 환경제어시스템을 들여다본다. 배양실과 재배동의 생육 여건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후 2시 47분 현재 시스템 계측기상에 온도 24.4도, 습도 55.1%, 이산화탄소 2570ppm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잘 유지되고 있네요.” 이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수치 가운데 하나라도 정상 범위를 벗어난다면 즉각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는 톱밥 배지 표고버섯 재배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가장 잘 활용하는 농민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문 제작한 환경제어시스템을 통해 배양실과 재배동(동당 210m²)을 원격으로 통제한다. 스마트폰으로도 조작이 가능해 외국에 나갔을 때에도 농장의 상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재배동 5개동에 설치를 마쳤고, 앞으로 재배동 27개에 모두 이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재배 효율을 높이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벤치마킹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 이 대표는 “표고버섯은 다른 종류의 버섯에 비해서도 유난히 생육 조건이 까다로워 ICT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누구나 활용 가능한 빅데이터를 확보하려면 앞으로도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00년 대학을 휴학한 뒤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생산직으로 2년 동안 일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작업 속에 스스로 자동차부품이 돼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 귀농을 결심하고 고향인 서천으로 향했다. 고교 시절 아르바이트로 두 달 정도 팽이버섯 농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버섯 재배를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표고버섯은 원목 재배 방식에서 톱밥 배지 재배 방식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버섯의 수확 시기를 기존 3년에서 6개월∼1년으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급이 이뤄지기 전이어서 농민들의 애로가 컸다. 이 대표는 “적정 생육온도에 대한 지식조차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았다”며 “몇몇 선도적인 농가들과 함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 가면서 재배 교본을 새로 만들어 나가야 했다”고 회고했다.
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새로운 재배법을 고안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비닐하우스 재배사에 에어컨을 처음으로 설치한 것. 당시만 해도 여름철 높은 기온 때문에 버섯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통풍을 시키거나 비닐하우스에 물을 뿌렸다. 이 대표는 “단열이 잘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 에어컨을 설치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누구도 에어컨을 설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표고버섯 재배에 에어컨은 필수 설비가 됐다”고 말했다. 버섯 재배사의 선반을 2단 이동식으로 바꿔 재배 면적 효율을 두 배로 높이는 아이디어도 냈다. 이 대표는 다양한 영농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1년에 한 번 정도는 일본 중국 대만 등지의 농가를 방문한다.
16년 동안 땀 흘리고 머리를 짜내는 사이 한길영농조합법인은 이제 이 분야의 선구적인 농가로 부상했다. 표고버섯 60t과 톱밥 배지 30만 본 등을 생산해 연 6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농어촌발전대상, 이달의 새농민상, 산림사업유공자 산업포장 등을 수상하는 기쁨도 뒤따랐다.
이 대표는 “스마트팜 시스템을 사물인터넷(IoT) 기반으로 더욱 발전시킬 생각”이라며 “주변에서는 가공품 개발 사업 등도 권하고 있지만 어떤 분야에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한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품질 좋은 표고버섯 생산에만 매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천=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반려동물 시장 ‘블루오션’ 파고든 충북보은 ㈜우성 김우성 대표
“요즘 같은 찜통 더위에도 굼벵이들은 끄떡없어요. 워낙 더위에 잘 적응하기 때문에 평소와 다름없이 먹이도 잘 먹고 무럭무럭 잘 자라요.”
6일 오전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하판2길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약 165m² 규모의 컨테이너형 창고 안. 600여 개의 사과 상자 크기 반투명 플라스틱 안에는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로 자란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 유충)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창고 안과 밖의 온도가 모두 섭씨 35도를 넘었지만 굼벵이를 바라보는 김우성 씨(33)의 얼굴에는 구슬땀과 웃음이 동시에 배어 나왔다.
김 씨는 굼벵이를 가공해 숙취 해소음료와 반려견 영양제를 만드는 농업회사 법인 ㈜우성을 이끄는 청년 사업가다. 30년 가까이 서울에서만 살던 ‘쌍문동 토박이’ 김 씨는 귀농 3년 만에 굼벵이를 키워 ‘농촌 희망가’의 주인공으로 변신했다.
김 씨는 고교 졸업 뒤 부모님이 운영하던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가게를 물려받았다. 직원을 10여 명 둘 정도로 영업이 잘되다 2014년 시행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나날이 손님이 줄더니 금세 빚이 불어났다. 김 씨는 눈물을 머금고 대리점 문을 닫았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파는 노점상을 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폭식을 하다 보니 몸무게가 20kg 넘게 늘었다.
2015년 굼벵이를 알게 되면서 김 씨의 삶은 전환점을 맞았다. “한 지인이 굼벵이를 키워보라고 했습니다. ‘농사의 농(農)자도 모르는 내게 웬 굼벵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기심도 생기더군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외국에서는 곤충사육 산업이 번창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굼벵이가 간 질환에 약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고단백에 불포화지방산이 함유돼 심혈관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굼벵이를 비롯한 곤충사육이 국내에서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김 씨는 한 굼벵이 사육농가로 가서 한 달여 동안 머물며 사육법을 배웠다. 부모는 귀농할 지역을 찾던 그에게 할머니가 젊었을 때 보은에 사놓은 땅을 내줬다. 보은에 내려와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상자 60개에서 굼벵이를 키웠다. 플라스틱 상자 안에 톱밥과 굼벵이를 넣고 물과 양분을 주는 방식이었다. 컨테이너 안에 야전 침대를 놓고 숙식을 하며 굼벵이 사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한 달 뒤 성충이 된 굼벵이를 말려 서울 경동시장 한약재상을 찾았지만 무작정 파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던 김 씨는 보은의 특산품인 대추를 활용하기로 했다. 대추와 굼벵이를 결합한 ‘굼벵이 대추즙’을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때마침 2016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굼벵이를 포함한 식용곤충을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김 씨에게 도움이 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굼벵이 대추즙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굼벵이 판로 개척에 나섰다. 레스토랑과 맥줏집 등을 공략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반려견 용품점에서 활로를 찾았다. “굼벵이를 혼합한 식품에 대한 얘기를 들은 한 업주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당장 시제품을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린 굼벵이 가루에다 쌀가루, 귀리, 코코넛 가루 등을 섞어 반려동물 영양제인 ‘벅스펫’을 만들었고 ‘대박’이 났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억대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 씨는 연어 등 다양한 재료와 굼벵이를 결합한 새 제품을 조만간 출시할 계획이다. 그는 “귀농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열정과 간절함, 그리고 남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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