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검사 빨라졌다…7분짜리 드라마 보고 문제풀면 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일 03시 00분


삼성서울병원 치매진단 프로그램
2시간 걸리던 검사 간편해져… 정답 패턴 측정해 정확도 95%
경도인지장애 환자까지 구별
전국 치매안심센터 212곳서 치매 감별검사와 CT 지원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본보 기자(오른쪽)가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MD)를 쓰고 치매진단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본보 기자(오른쪽)가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MD)를 쓰고 치매진단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등장인물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하세요.”

지난달 30일 삼성서울병원 연구실에서 기자가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MD)’를 쓰자 검사를 진행하는 연구원이 이렇게 당부했다. 잠시 뒤 마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앉아 있는 듯한 생생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연구원의 당부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말할 때마다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컴퓨터 모니터에 나오는 질문을 맞닥뜨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저 혹시 알코올성 치매인가요?” 다행히 결과는 정상이었다. 휴∼.

○ 짧은 드라마로 치매 검사 ‘뚝딱’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팀이 개발한 HMD 치매 진단 검사의 가장 큰 장점은 편리성이다. 현재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널리 쓰이는 치매 선별 검사는 숙련된 전문가가 실험을 안내해야 하는 데다 검사를 진행하는 데 1, 2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평소 접하지 않은 문제 유형으로 인해 실험에 참여하는 고령자들이 정신적으로 힘겨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기자가 체험한 이번 프로그램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상황을 짧은 드라마로 구성한 뒤 드라마 속 내용을 기억해내는 방식이라 거부감이 적다. 이날 실험을 진행한 최종두 연구원은 “기존 검사가 제한된 시간 안에 단어를 외우는 등 일종의 시험 같다면 이 프로그램은 실험자의 인지기능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전체 드라마 상영시간은 7분이지만 등장인물, 배경, 소품, 어투 및 억양 등 모든 요소가 뇌과학 연구기법에 따라 치밀하게 구성돼 있다. 피실험자는 영상이 끝나면 방금 본 영상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해 △특징 자유 기술 △얼굴 매칭 △위치 매칭 등 총 3가지 유형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10∼20분 동안 전체 102개 질문을 통해 피실험자가 정상인지, 경도인지장애인지, 치매인지 구분해낸다.

이번 프로그램은 검사의 편리성을 크게 높이면서도 치매 판별의 정확도를 높였다. 단순히 피실험자가 맞힌 정답 개수로 치매 여부를 판단하는 게 아니다. 실험자들의 정답 패턴을 측정하는 등 기계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실제 일반인과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매 환자 등 52명을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93.8∼95.1%의 정확도를 보였다.

특히 이 검사를 통해 치매와 정상인의 중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치매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아밀로이드 양성’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 검사를 표준화한 뒤 내년 상반기 각 보건소나 노인 관련 시설에 보급할 예정이다.

○ 치매안심센터 통해 치매 진단 가능

스스로 치매가 의심된다면 정부가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전국 치매안심센터 가운데 현재 212곳에서 치매 진단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간단한 선별 검사부터 시작해 치매 확진을 위한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지원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센터를 찾아가기 어렵다면 ‘찾아가는 치매검진’ 서비스를 신청해도 된다.

60세 이상 노인이 센터를 방문해 치매 검사를 원할 경우 1단계로 선별검사(MMSE-DS)부터 시작한다. 이 검사는 기초적인 단계로 ‘올해가 몇 년도인가’ ‘지금 무슨 계절인가’ 등 간단한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1단계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면 2단계 진단검사(SNSB)를 진행한다. 만약 2단계에서 치매가 의심된다면 치매안심센터의 의사가 소견서를 작성해준다.

치매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마지막 감별검사는 혈액 검사와 CT다. 치매안심센터와 연계된 협약병원에서 이 검사를 진행한다. 60세 이상이면서 중위소득 120% 이하(4인 가구 기준 월 소득 542만 원 이하)에 해당할 경우 본인부담금을 최대 11만 원까지 정부가 지원한다.

나덕렬 교수는 “아직 치매를 되돌릴 방법은 없지만 늦출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은 존재한다”며 “치매를 두려워하기보다 조기 진단을 통해 선제적으로 치매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치매#치매 진단#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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