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조홍진(가명·49)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 당시 배 위쪽에 압박감을 느껴 병원에 갔다가 발견했다.
어린 나이에 지방간이 생긴 이유는 뭘까. 우선 어느 정도 가족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당시 의사는 추정했다. 조 씨의 외할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데다 조 씨의 할아버지는 심장 계통에 이상이 생겼다. 하지만 가족력이 전부는 아니었다. 조 씨의 동생에겐 지방간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력, 체질, 생활습관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란 판단이 나왔다.
조 씨는 이후 많은 병을 앓았다. 콜레스테롤 수치, 중성지방 수치가 모두 높았다. 요로 결석이 생기기도 했다. 요즘에는 당화혈색소 수치도 높아 당뇨병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 씨는 키 168cm, 몸무게 77kg으로 비만이다. 조 씨는 “한때 체중을 70kg까지 줄였을 땐 몸이 덜 피곤한 것 같았는데, 다시 체중이 늘어나니 피로감도 커졌다”라고 말했다.
조 씨가 백용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50)를 만났다. 백 교수는 조 씨의 최근 3년 동안의 검진 결과지를 보고 나서 생활습관, 체질, 유전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결론지었다. 백 교수는 “조 씨의 병명을 굳이 하나로 말하자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다. 한국 중년 남성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질병”이라고 소개했다.
○ 간세포 효소 수치만 믿지 마라
혈액 검사를 통해 간이 어느 정도 손상됐는지를 알 수 있는 검사가 있다. 보통 ‘간수치’라 부르는 ALT와 AST 수치다. 이 둘은 간세포 안에 존재하는 효소다. 간세포가 손상을 받으면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수치도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ALT와 AST 수치가 각각 40 미만이면 간의 상태가 정상이라 판단한다. 백 교수는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남자는 30, 여자는 20 미만일 때만 정상으로 규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조 씨의 경우 ALT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했다. 47까지 올라갔다가, 운동하면서 관리하니 28로 떨어졌다가, 조금 방치하니 다시 45로 나빠졌다. 사실 조 씨는 이 수치에 민감하지 않다. 조 씨는 “지방간 진단을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40을 넘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치를 간 건강의 척도로 여긴다. 하지만 검진하는 날의 몸 상태에 따라 이 수치는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최고 1000까지 치솟기도 한다. 백 교수는 “일단 간수치가 높아지면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방간이 있나 없나를 어떻게 확인할까. 바로 복부초음파 검사다. 일반적으로 간에 지방이 5% 이상 축적됐을 때 지방간이라 진단한다. 경증, 중등도, 고도 지방간으로 나눈다. 백 교수는 “초음파 검사로 웬만한 것은 알 수 있다. 다만 더 정밀하게 알고 싶으면 간 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지방간이 심혈관계 질환을 부른다?
백 교수에 따르면 지방간은 단순지방간과 지방간염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단순지방간은 지방이 축적돼 있는 상태로, 아직 다른 질병으로 악화하지 않은 경우다. 지방간염은 염증이 동반된 상태다. 지방간염의 경우 향후에 간이 굳어지는 섬유화현상이 시작되면 간경화로 악화할 수 있다. 고지혈, 당뇨, 비만 등이 지방간염의 위험인자다. 이런 질병이 있다면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5년 혹은 10년 이후에 간경화로 악화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따라서 초음파를 통해 정기적으로 간 검사를 하는 게 필수다.
백 교수는 조 씨를 단순지방간으로 진단했다. 안심해도 되는 걸까. 백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단순지방간이 지방간염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질병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순지방간이 간경화로 악화할 확률은 크지 않다. 하지만 심혈관계 질환이나 대사증후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백 교수는 “단순지방간이 있는 사람이 간이 건강한 사람보다 심근경색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최근 입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의학계에서는 최근 들어 단순지방간이라 하더라도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같은 뇌심혈관계 질환의 직접적인 위험인자로 규정하는 추세라는 게 백 교수의 설명이다.
○ 검증된 약을 먹어야
미국인의 경우 성인(만 20세 이상)의 50% 정도에서 지방간이 발견된다. 국내는 지방간 환자 비율이 성인의 25∼40% 수준이다. 낮지 않은 수치다. 국내나 해외나 비슷하게 지방간 환자의 10% 정도가 지방간염을 동반한다. 이 비율을 낮추는 것이 의료계의 숙제다.
현재 전 세계 제약업체들이 지방간염 치료용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효과적인 신약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10여 개의 신약 후보 물질이 추려진 상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단순지방간에서 지방간염으로 악화하기 전에 생활습관 교정을 중심으로 한 치료가 더 중요하다. 생활습관을 통해 고지혈증, 비만, 당뇨 등의 위험인자를 줄이자는 취지이다.
백 교수는 조 씨와 같은 단순지방간 환자들에게 필요한 대처법도 알려줬다. 첫째로 섭취 열량을 낮춰야 한다. 1년 동안 자기 체중의 5∼10% 감량을 추천했다. 만약 체중이 80kg이라면 1년에 4∼8kg만 줄이라는 얘기다. 체중을 줄이겠다고 식사량을 지나치게 줄이면 염증 반응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지나친 감량은 금물이다. 동시에 가벼운 근육운동을 포함해 매주 3회 이상, 매회 30분 이상의 운동을 권했다.
간 기능을 개선한다고 알려진 약물에 대해서는 무조건 복용하지 말라고 했다. 일부 약품의 경우 간에 좋은 효능을 지나치게 강조하지만, 나머지 성분이 간 독성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방치땐 간경화로 악화▼
지방간에 관한 궁금증 ABC
지방간은 40대 이후 장년층에게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술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론 술을 많이, 자주 마시는 40∼60대라면 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길 확률이 높다. 문제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 40대 이후 세대도 지방간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비(非)알코올성 지방간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대해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방치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하는 게 확인됐다. 최근에는 소아나 청소년에서도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백용한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부터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의 도움으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대해 알아보자.
1. 비알코올성 지방간 왜 생기나
탄수화물 섭취가 많은 한국에서는 정상 체중인데도 지방간이 나타날 때가 많다. 복부에 특히 살이 많은 사람이라면 지방간을 의심해야 한다. 이 경우 간에도 지방이 필요 이상으로 쌓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비만인 사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 서서히 간을 망가뜨린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라고 하면 단순지방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지방간염으로 악화한다. 실제 진료실에서 이런 환자는 흔히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큰 증세가 없고, 조금만 신경 쓰면 경과가 좋아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서서히 간을 망가뜨릴 수 있다. 3. 어떤 증세가 나타나나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거의 모든 환자에게서 별다른 증세가 없다. 간이 상당히 손상된 후에야 황달, 복수, 피로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그제야 대처하려면 늦다. 지방간염을 찾아내려면 조직 내 지방 세포 사이에 염증 세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간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4. 다른 질환을 동반하는 병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다른 병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 무서운 질환이다. 대체로 당뇨병,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대사 질환이 함께 나타난다. 문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과 대사 질환이 서로 악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있는 환자가 당뇨나 심혈관계 질환에 걸리면 악성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5. 탄수화물 섭취 줄여라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습관 개선이다. 그중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게 첫걸음이다. 간에 쌓인 지방만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이나 시술은 현재로서는 없다. 적절한 운동을 통해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동시에 복부에 쌓인 지방을 걷어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간 내 염증을 호전시키려면 체중의 10% 이상 감량이 필요하다.
▼환자와의 유대감 중시… 간섬유화 치료법 연구 ‘학구파’▼
지방간 베스트 닥터 백용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백용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진료실뿐만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든 환자를 만나기 전에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려 애쓴다. 사소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이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백 교수는 환자와의 유대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유대감을 바탕으로 백 교수는 환자에게 쓴소리도 자주 한다. 사실 지방간뿐 아니라 간질환의 특성상 의사와 환자는 장기전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환자는 곧 지칠 수밖에 없다.
백 교수는 간 전문의들 사이에서 ‘학구파’로 불린다. 여러 학회 활동을 할 때에도 주로 학술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대한간학회에서는 학술위원과 간행위원, 연구기획위원을 맡았다. 대한간암학회에서는 학술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 대한간학회가 간경화와 B형간염 치료 가이드라인을 개정할 때에도 참여했고 2017년 대한간학회 간경화 가이드라인 개정 때는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올해 서울에서 국제간암학회의 학술대회가 열렸을 때도 위원장으로서 행사를 주도했다.
간섬유화와 간경화의 확실한 치료법은 아직 없다. 백 교수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바로 이 치료법 개발이다. 지방간을 포함한 만성 간질환은 간섬유화를 거쳐 간경화로 악화된다. 백 교수는 간섬유화 과정에서 질병 악화를 차단하는 기초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는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바이오마커(지표)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또 혈청을 이용해 간암을 진단하는 방법을 연구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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