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울트라마라톤 ‘1세대’ 이윤희 파워스포츠과학연구소 대표(60)는 고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먹고 운동하는 법에 관심이 많았다. 한 스포츠 잡지에서 보디빌더 출신 영화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미국) 같이 멋진 몸을 만들려면 단백질을 잘 먹어야 한다는 기사를 본 뒤 웨이트트레이닝과 단백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금은 ‘달리는 영양 및 건강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당시 아놀드에 매료돼 있었는데 서울 태릉선수촌의 체력강화 위원이 근육을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단백질을 잘 섭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과연 먹어서 아놀드처럼 될까’ 궁금했다. 동국대 식품가공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소년체전에 나가려고 태권도를 잠시 한 게 운동의 전부. 그는 대학을 다니며 체육과 수업을 많이 들었다. 운동과 영양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도 병행했다. 이 대표는 대학을 다니며 좋은 단백질을 만들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키웠다.
“1984년 빙그레에 입사했다. 식품을 연구 개발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연구 개발 시스템을 배운 뒤 생산부로 가서 직접 생산도 했다. 1991년엔 무역회사로 옮겼다. 무역 자유화가 아닐 때 특정 원료가 어떻게 오가는지를 배웠다.”
1993년 단백질 식품 보조제를 만드는 (주)파시코를 창립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엔 단백질이란 개념조차도 없었을 때였다. 국내에 합법적인 단백질 식품 보조제 생산 규정이 없었다. 국립보건원까지 찾아가서 없던 단백질 원료 수입 규정을 만들어 1996년 9월 1일부터 정식으로 국내산 단백질 보조제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까지 만해도 수입산 당백질을 알음알음으로 먹던 때였다. 운동생리학 박사는 물론 영양학을 공부한 박사들도 단백질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없을 때였다.”
이 대표는 1996년 창립한 한국운동영양학회에 가입해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 때부터 5대 영양소에 대한 개념이 체계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하던 이 대표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열린 잠실종합운동장 개장 기념 10km 마라톤대회에 참석하면서 마라톤에도 빠져 들기 시작했다.
“당시 건강을 위해 조깅을 즐기고 있었는데 에어로빅 체조가 국내에 소개되는 등 유산소 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었다. 또 심장혈관계의 상관관계 논문이 해외에서 많이 나왔다. 하지만 국내에는 돌연사에 대한 연구도 별로 없을 때였다. 그래서 달리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맨땅에 헤딩하듯 배웠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본 뒤 풀코스에 관심을 가졌다.
“황영조가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제치고 몬주익 언덕을 넘어 우승하는 장면에 감격했다. 나도 풀코스를 달릴 수 있을까? 그 때부터 조깅 거리를 늘렸다.”
1994년부터 마스터스에게 참가 기회를 준 동아마라톤 1996년 대회에서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1998년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달렸다. 2016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 200회 완주를 기록했고 올 11월 초 열린 jtbc 마라톤에서 풀코스 231회를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3시간30분. 2000년부턴 울트라마라톤도 병행했다. 한계에 따른 몸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2000년 한국울트라마라톤연맹(KUMF)을 만들어 2004년 법인화 했다. 초창기 국내에는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없어 일본 것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 캠코더와 사진기 들고 가서 대회를 어떻게 개최하는 지 찍어 와서 그대로 따라했다.”
그해 63km 울트라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42.195km 풀코스에 하프코스를 더한 거리였다.
“회원 모두 5시간30분에서 6시간에 완주했다. 인터넷으로는 울트라마라톤을 배웠지만 개념도 없었고 트레이닝방법론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아 되는구나. 더 열심히 달렸다.”
이 대표는 그 무렵부터 운동과 영양, 건강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또 수명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건강 수명을 어떻게 늘릴까. 2000년 초중반 미국에서 그런 논문이 많이 나왔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현 한국스포츠정책개발원)을 찾아 공부했고 결국 한국체대에서 운동생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에서 근육 생리학을 공부한 김창근 교수님을 만난 게 내겐 행운이었다. 그분과 함께 달리면서 많은 연구를 했다.”
2003년 한국체대 석사과정에 들어간 이 대표는 이듬해 김창근 교수를 마라톤에 입문시켰다. 김 교수는 5km, 10km, 하프코스, 풀코스에 이어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이 대표는 2009년 운동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김 교수님은 훈련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우리가 봤던 논문이 달리는 것에 다 들어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우린 달리며 토론했고 다양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의미 있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강화도에서 강릉까지 달리는 한반도 횡단을 하면서 150km와 200km에서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포기하면서 배운 게 더 많았다. 몸이 더 이상 진행 못하는 경험, 그 생리현상을 분석하고 싶었고 결국 찾았다. 200km 이상을 달릴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근육 경련이 전신에서 동시에 일어나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휴식을 취하고 영양을 보충해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몸에 에너지는 있는데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런데 한번은 1시간 정도 쉬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달려 완주한 경험도 있었다. 과연 왜 그럴까?”
세계 운동생화학학회에서 만난 벨기에 교수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함께 분석해보자고 했다.
“주변에 울트라마라톤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시작할 때, 그리고 매 50km 마다 혈액을 채취해 분석했다. 300km까지. 그리고 완주한 뒤 휴식을 취할 때도 혈액을 채취해 분석했다. 국내에선 분석이 불가능해 벨기에로 샘플을 보내서 분석했다. 그랬더니 달린 지 24시간 무렵, 거리로는 120km에서 160km 지점에서 전신경련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게 다 똑같았다. 4년 정도 똑같은 실험을 했다. 그래서 우리 몸이 극한으로 망가질 때 몸속에서 복구 단백질이 급격히 올라가는 현상을 발견했다. 우리 몸이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는 몸속 기전이었다. 그렇다보니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린 그것을 ‘골든 크로스(Golden Cross)’로 명명하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 지를 연구하기도 했다. 결국 훈련을 잘하고 잘 쉬고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대표는 이런 발견 내용을 2011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해 큰 반향을 이끌어 냈다. 이후 이 대표는 마라톤과 심장혈관의 상관관계 등 운동에 따른 생리현상을 삼성병원과 상계백병원 의사들과 계속 분석하고 있다.
“달리기가 심장에 좋은 영향을 주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도 많다. 현장에서 달리다기 심장 이상을 일으키는 등 좋지 않은 현상도 나타난다. 그 기전을 찾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운동할 때 혈압은 올라가다 어느 순간에 멈춰서 지속해야 하는데 계속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여 명을 무작위로 찾아보니 부정맥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를 기록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 3시간30분, 4시간, 4시간30분 기록대를 가진 사람들을 다시 분석했더니 4시간 이후 기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부정맥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무리한 훈련이 심장 이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서브스리를 달성하기 위해선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몸은 버티지 못하는데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다보니 부정맥으로 나타난 것이다. 심장내과 전문의와 함께 연구해 해외 저널에 발표했다.”
이 때부터 이 대표는 서브스리 주자들에게 즐기면서 천천히 달리라고 권유하고 있다.
“치료해서 정상으로 갔던 사람도 다시 강하게 훈련하면 다시 부정맥이 나타났다. 그럼 무리하게 서브스리를 위해 달리지 말라고 한다. 잘못하면 돌연사 한다. 과거 서브스리 페이스메이커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은 안한다. 마라톤 선수 등 선천적으로 타고난 서브스리 주자는 해도 되는데 후천적인 서브스리 주자는 안하는 게 좋다.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 3시간 언저리 기록을 가진 사람들이다. 조그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엄청 훈련을 많이 하는데 어느 순간 가슴이 덜컥거린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
심장 CT도 찍어 봤다.
“한반도 종주 620km를 마친 사람들 심장을 CT로 찍어 봤다. 심장이 20~30%는 볼륨이 커져 있었다. 한마디로 무리해서 부은 것이다. 회복 속도를 봤더니 대부분 1주일에서 10일 정도면 원위치로 돌아갔다. 풀코스와 100km, 200km, 300km를 완주한 뒤 회복기간을 비교 했더니 긴 거리에서 부은 강도가 더 높았을 뿐 회복기간은 비슷했다. 다만 이 기간보다 더 걸리는 사람들은 긴 거리를 달리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 대표는 운동 후 빠른 회복과 오래 운동을 즐기기 위해서 단백질 섭취를 권장한다. 일반적으로 단백질의 하루 필요량은 일반인의 경우 1g/체중 1kg 정도다. 체중이 60kg이면 60g을 먹으면 된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1.5~2g/체중 1kg을 섭취하면 충분하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미세하게 파열 된다. 심하게 운동하고 나면 근육이 아픈 이유다. 단백질을 섭취해야 빨리 복구된다. 일반 내분비 대사에도 단백질이 필요하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회복 기간이 길어진다. 새 근육이냐 헌 근육이냐의 차이다. 단백질은 혈액의 성분이기도 하다. 죽은 세포를 없애고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하다. 염증 반응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 몸 세포 변화의 사이클을 빠르게 돌려야 피곤하지 않고 건강하다. 그러려면 잘 먹어야 한다.”
영어의 단백질인 Protein은 그리스어로 ‘아주 중요한(Very Important)’이란 뜻이라고 한다.
“단백질은 영양소중 가장 중요하다. 부족하면 머리가 푸석하고 손발이 튼다. 또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호르몬이 활성화가 안돼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영양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럼 단백질은 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
“가장 좋은 섭취 방법은 자연식품을 먹는 것이다. 육류와 어류, 식물성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어떤 단백질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양학적으로 매끼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단백질을 매번 먹기 쉽지 않다. 그 때 보충제를 먹으면 된다. 몸속에 아미노산 풀(Pool)을 일정정도 올려놓는 게 피로회복과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대표는 아침에 달리고 저녁에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하지만 피곤하면 쉰다.
“무슨 운동이든 억지로 하면 좋지 않다. 난 주 3, 4일 운동한다. 달리기는 10km에서 13km 정도만 달린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 풀코스를 달린다. 울트라마라톤은 몸 컨디션이 좋으면 하고 아니면 안한다.”
그는 마라톤 마니아들에게 조언을 했다.
“즐겨야 오래 달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쟁을 좋아한다. 빠른 사람을 존중하고 따라 하려고 한다. 성취적인 면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다. 그런 분들이 대부분 휴식이 부족하다. 또 체중에 대한 부담으로 잘 안 먹는다. 그럼 몸이 망가진다.”
이 대표는 재밌는 실험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면 최소 1주일은 푹 쉬어야 회복이 빠르다. 마라톤을 완주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는 달리기를 ‘회복주’라고 한다. 과연 회복주가 도움이 되는 지를 실험했다. 그런데 피로물질이 내려가다 회복주를 하면 더 올라갔다. 결국 회복하는데 더 오래 걸렸다. 푹 쉬는 게 좋다. 잘 먹고 일찍 자는 게 최고다.”
이 대표는 연구와 회사 운영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한국체대와 삼육대 등에서 후학들도 지도한다. 스포츠 단체 관계자들과 지도자들에게도 강의한다.
“실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전달한다. 현장에서 바로 써 먹을 수 있어야 실질적인 지식이다. 잘 먹고 잘 쉬며 운동해야 경기력이 좋다. 그리고 즐겁게 오래 살 수 있다. 이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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