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된 아들은 아직도 집에서 대변을 본 뒤 닦아 달라며 부른다. 물론 닦을 줄 몰라 그러는 게 아니다. 이때마다 자연스럽게 변기에 담긴 아들의 변을 관찰한다. 변의 굵기, 길이, 모양, 딱딱한 정도, 색깔, 그리고 냄새까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장과 장내 미생물의 상태가 아이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습관이 됐다.
환자 진료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법의 토대는 1997년 영국 브리스틀대의 스티븐 루이스 박사와 케네스 히튼 박사가 고안해 임상연구와 진료에 사용한 ‘브리스틀 대변 형태 척도’다.
우리는 대변 대부분이 부패한 음식물의 찌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변의 70∼80%를 차지하는 수분을 제거하면 3분의 1은 소화되지 않은 섬유질이다. 다른 3분의 1은 지방과 염류,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세균들의 사체다. 즉 대변의 건조 중량의 3분의 1 정도는 세균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대변에 포함된 그 많은 세균들은 어디서 왔을까? 당연히 이들의 기원은 우리의 장에 살면서 그곳에서 끊임없이 분열하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다.
요구르트를 집에서 만들면 의외로 너무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우유를 80도 정도로 가열해 우유 속에 있을지 모르는 잡균을 죽이고, 온도를 낮춘 뒤 요구르트를 한 병 넣고 잘 저어준다. 이 후 적당한 온도(37∼40도 정도)에서 10시간 정도 두면 된다. 이 과정을 좀 더 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유라는 배지에 유산균이라는 종균을 넣으면 그 균이 우유 속에 있는 유당을 포함한 당 성분을 섭취해 유산이라는 발효 산물을 만든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최종 산물인 걸쭉한 농후발효유인 요구르트는 유산으로 인해 시큼한 맛이 나며 mL당 1억 마리 이상 살아있는 유산균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배출하는 대변이 만들어지는 기본 원리는 이와 다르지 않다. 장은 길이가 긴 37도의 발효터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엄마로부터, 주변 환경으로부터, 그리고 다양한 발효 음식으로부터 얻은 종균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은 1박 2일에 걸쳐 약 9m(입에서 항문까지의 길이)의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세균들에 의해 발효 과정을 거치고, 항문으로 배출되기 전 잠시 머문다. 이 여행의 종착역은 변기이며 여행자의 최종 모습이 바로 대변이다.
그래서 대변은 먹는 음식에 따라, 장내에 머무르는 시간에 따라, 이곳에 있는 장내 세균의 종류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그래서 대변을 관찰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그 사람의 장 건강을 예측할 수 있는 징표다. 오늘도 변기에 담긴, 바나나 모양을 한 아이의 건강한 변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흔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건강하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아이의 변을, 그리고 자신의 변을 매일 관찰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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