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 울리면 천장서 스크린 ‘스르르’… 비상 대피통로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4일 03시 00분


국가 현안 해결하는 ‘융합연구단’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복합재난대응(MDCO) 융합연구단이 개발한 접이식 비상대피통로. 화재 경보가 울리면 안내 방송과 함께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와 유독가스를 막아 주는 간이터널이 만들어진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복합재난대응(MDCO) 융합연구단이 개발한 접이식 비상대피통로. 화재 경보가 울리면 안내 방송과 함께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와 유독가스를 막아 주는 간이터널이 만들어진다.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15-2동. 복합재난대응(MDCO) 연구단이 입주해 있는 이 건물 입구에 접이식 비상대피 통로가 놓여 있었다. 화재경보가 울리자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와 금세 간이터널이 만들어졌다. 쇼핑몰,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독가스를 차단해 주는 장치다. 아직은 시험 단계지만 내년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4년 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산학연 연구자들이 참여했던 한 스터디 모임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융합 클러스터’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당시 모임을 주도했던 백용 건기연 책임연구원은 2016년 12월부터 스터디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하는 MDCO 융합연구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백 단장은 “클러스터 활동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인문학 강의를 듣기도 하고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여수 한국석유공사 비축기지 같은 현장을 탐방했다”며 “다양한 경험과 토의를 통해 엔지니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회가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한 바람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사람은 통과할 수 있지만 화재 연기는 막아 주는 ‘에어 스크린’도 이런 활동을 통해 탄생했다.

연구단에는 현재 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한 KAIST, GS건설 등 40여 개 기관 2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다. 지진과 침수, 화재 등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건물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재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조기에 실용화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연구단은 최근 진동과 온도, 연기, 지하수위, 영상 등 각종 센서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조기 재난경보·대응 시스템을 개발했다. 위험 상황이 감지되면 어느 위치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어느 영역이 안전하고 위험한지, 어느 방향으로 대피해야 하는지 등을 건물 곳곳에서 시스템이 알려 주고 비상 대피통로나 마스크, 침수 방지 장치 등이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내년 6월 8개 동 2700가구로 구성된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에 설치될 예정이다. 백 단장은 “시범 운영을 통해 기술을 실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소기업을 설립해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종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이 개발한 감염병 진단용 고민감도 전기장효과트랜지스터(FET) 센서.
신종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이 개발한 감염병 진단용 고민감도 전기장효과트랜지스터(FET) 센서.
대전 한국화학연구원에 있는 신종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 역시 2년간의 융합 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구성됐다. 메르스, 지카, 신종 인플루엔자(H1N1) 등 세계를 강타한 고위험성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진단 기술과 백신, 치료제, 예측, 확산방지 기술을 2022년까지 개발한다. 김범태 CEVI 융합연구단장(화학연 책임연구원)은 “만성질환이나 에이즈(HIV) 같은 질병은 늘 환자가 있는 반면 감염병은 위험성은 크지만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만큼 기업이 잘 뛰어들지 않는 분야”라며 “국내에 있는 각 분야 전문가를 한데 모았다”고 말했다.

CEVI 연구단은 최근 세계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감염병 보도 기사 빅데이터를 토대로 향후 한국에 유입될 가능성과 위험도가 높은 감염병을 예측할 수 있는 딥러닝(심층기계학습) 기반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했다. 연구단의 안인성 확산방지팀장(KISTI 책임연구원)은 “최근 30년 동안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일으킨 감염병이 언제, 어떤 경로로 확산됐는지 과거 기사 데이터로 AI에 학습시킨 것”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초기 단계인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예측 정확도는 85∼90%이다.

연구단은 새로운 고효능 메르스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전임상시험도 마쳤다. 연구단의 김성준 예방팀장(화학연 책임연구원)은 “메르스 백신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협의를 통해 현재 기술 이전할 회사를 찾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공항에서 감염병 대유행 지역을 방문한 여행객을 통과시켜 감염 여부를 자동으로 감지하는 ‘스마트 터널’ 등을 개발 중이다. 김 단장은 “기초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실용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의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고양·대전=송경은 동아사이언스기자 kyungeun@donga.com

- 이 기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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