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 해, 과학계의 화려한 연구업적 뒤편에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난 과학자들이 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조용히 물러난 이들의 삶을 조명해 봤다.
인류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유명 과학자가 올해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3월 14일 영국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타계했다. 21세부터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불치병인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을 앓아왔지만, 이후 55년간 현대 물리학 분야의 중요한 연구에 참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블랙홀에서도 에너지가 희미하게 나올 수 있음을 주장한 ‘호킹복사’ 이론이 특히 유명하다. 물리학계에서 서로 섞이기 어렵기로 소문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의 결합을 시도한 게 의미 있다. 그는 특유의 유머로 늘 밝은 모습을 보인 과학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했다. ‘스타트렉’이나 ‘심슨가족’ 같은 유명 영화에 출연했고, 강연활동도 활발했다. 1988년 출간한 저서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에서 110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이달 8일에는 미국의 컴퓨터공학자 에벌린 베러진이 세상을 떠났다. 1925년 미국 브롱크스에서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입학한 야간 여대에 과학 전공 학과가 없어 경제학을 공부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뒤 컴퓨터 회사에 입사해 당시 몇 안 되는 여성 컴퓨터공학자가 됐다. 그는 현대인의 삶을 바꾼 굵직한 개발을 여럿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69년 개발한 워드프로세서로, 당시 주로 여성이 맡던 비서 업무를 돕기 위해 개발한 뒤 회사까지 차렸다. 또 세계 60개 도시 컴퓨터를 연결한 항공예약 시스템 등을 개발하며 자동화 물결을 선도했다. 말년에는 재단을 설립해 여성 공학도에게 장학금을 줬다.
지난달에는 X선 결정학을 이용한 전자현미경 원리를 개발한 리투아니아 태생의 영국 화학자 에런 클루그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투과전자현미경의 원리를 발견하고 이것으로 단백질 구조를 연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며 물체에 X선을 쪼여 물체의 3차원 원자 구조를 알아내는 원리는 오늘날 컴퓨터단층촬영(CT)에 영감을 줬다. 세계 생명과학계를 이끄는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MRC) 소장과 영국왕립학회장까지 역임한 그는 광우병과 유전자변형작물(GMO) 등 대중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상세한 과학 보고서를 공개하며 과학계와 대중의 소통을 적극 주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 3월에는 영국의 생명과학자로 인간의 게놈정보를 포함해 과학 데이터를 무상으로 공개하고 공유하도록 촉구한 존 설스턴 박사가, 7월에는 우주의 구성입자 중 하나인 ‘맵시쿼크’가 모여 이룬 중간자 ‘제이/프사이’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버턴 릭터 미국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 전 소장이 타계했다. 달을 방문했던 우주인 두 명도 올해 유명을 달리했다. 1972년 4월 달에 아홉 번째로 착륙하고 우주왕복선 첫 비행까지 이끈 미국항공우주국(NASA) 아폴로 16호의 사령관 존 영과, 1969년 아폴로 12호 임무로 네 번째로 달을 밟은 앨런 빈이 각각 1월과 5월에 달보다 먼 하늘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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