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청률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요즘이다. 40~50%의 시청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동시간 대 시청률이 10%만 넘어도 소위 '대박'이라고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프로그램의 다양성으로 한정된 시간에 자신의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시청자의 선택권이 많아진 건 반가운 사실이나, 프로그램 하나로 전 국민이 울고 웃으며 함께 공감대를 나누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 한 편이 다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케이블 역사를 새로 쓰며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jtbc의 'SKY캐슬'이 연일 화제다. 'SKY캐슬'의 무엇이 이토록 대한민국을 열광하게 했는가?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집단 안에서 자식을 어떻게든 성공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처절한 욕망과 민 낯을 그리는 풍자 드라마다. 마냥 웃으며 볼 수 없는 이유는 현실의 축소판으로 우리 누구나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논리, 사회적 구조의 모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콤플렉스와 자존감을 비롯한 정신문제, 결과로만 평가받는 실적주의 등 삶에서 맞닥뜨리는 불편한 진실을 과감히 건드리는 데서 오는 공감대가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 체온과 보호, 식량에 이르기까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확보하기 위해 형제들과 경쟁한다. 그렇게 시작된 경쟁은 점차적으로 범위는 넓어지고 강도는 심화된다. 조직이든 산업이든 국가든 모든 사회 체계에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계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열 순위에 예민하다. 세상은 승자 아니면 패자라는 잔인할 정도로 단순한 구도만 존재하는 것 같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동기를 부여해줄 요소로는 하나같이 '경쟁'이 내정되어 있다.
마거릿 헤퍼넌은 '경쟁의 배신(RHK)'을 통해 '경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경쟁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동기와 영감을 부여해주고, 회사와 기관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리라는 바람으로 경쟁에 크게 기대왔지만 경쟁에 대한 지나친 숭배가 오히려 문제를 야기했고, 우리를 해결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로 만들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극중 정준호가 분한 강준상이 “낼 모레 쉰이 되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모르는 놈을 만들었잖아요, 어머니가!"라고 울부짖는 모습에 가슴 한쪽이 시려오는 이유다. 모두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교육 과정에서 등수 매기기는 일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든다. 그 결과 학생들은 '네가 져야만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생 교훈을 배우게 된다. 예서를 통해 잘못된 교육이 아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이해 능력이 발달하는 민감한 시기에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만다. 서로의 장점을 찾아내고 구축해주는 능력은 무시되고 만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받는 방식은 결국 서로를 쉽게 비교하게 만들고 경쟁을 점점 부추기며 수렴적이며 획일적인 사고를 강화하게 만들었다.
경쟁의식의 문제점은 결국 누군가는 실패하는 사람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과잉경쟁이 기대만큼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쟁을 통한 압박과 위협으로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필연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승리할 수는 없다. 저자는 시험을 성공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함께 배우되 자기만의 속도로 배울 수 있는 다양성과 과정이 존중받아야 한다.
지위나 보상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고 항상 누군가는 자기보다 더 잘하고 더 많이 성취하기 때문에 진정한 만족은 결코 찾아올 수 없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르며 이것으로는 사람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마거릿 헤퍼넌은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대안으로 협력과 상호의존을 제시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지능보다 집단의 지능을 올리는 것이 더 쉬우며 협력을 할수록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해결 방법도 더 쉽게 나온다고 한다. 경쟁이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창조적인 사고를 되려 방해하고 있다. 경쟁적인 위치는 필연적으로 제한된 사고를 낳기 때문이다. 함께 성취하고 발전해 더욱 큰 보상을 획득하는 승리를 외면한 채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 불필요한 소모전은 멈추고 서로 힘을 모아 협력할 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SKY캐슬'이 브라운관을 넘어 우리 사회에 올바른 미래를 위한 담론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좋은 책을 널리 알리고 비(非)독자를 독서의 세계로 안내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 도서 큐레이터. 수년 간 기획하고 준비한 북클럽을 오프라인 서점 '최인아책방'과 함께 운영하며,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한 달에 한 권, 수 많은 신간 중 놓쳐서는 안될 양질의 책을 추천하고 있다. 도서 큐레이터가 세심하게 고른 한 권의 책을 받아보고,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최인아책방 북클럽은 항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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