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만 년 전, 험준한 러시아 알타이산맥의 한 산등성이에 자리한 동굴 풍경은 오늘날의 국제회의장 못지않게 다양하고 역동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되는 둘 이상의 인류가 공존하며 각기 문화와 예술을 꽃 피운 사실이 새로운 연대 측정 결과 확인됐기 때문이다.
카테리나 도카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 연구원팀과 제노비아 제이콥스 호주 울롱공대 고고과학센터 연구원팀은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된 화석과 유물, 지층 퇴적물 등의 연대를 다양한 기술로 측정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30일자에 각각 발표했다.
데니소바 동굴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모두 8개의 인류 뼛조각 또는 치아 조각 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화석 속 DNA를 정밀하게 해독해 분석한 결과 그 중 4개 화석의 주인공은 수만 년 전까지 아시아 대륙 일부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친척인류 ‘데니소바인’으로, 3개는 비슷한 시기에 유럽 지역에 살던 친척인류 ‘네안데르탈인’으로 밝혀져 있다. 지난해 해독된 ‘데니소바11번’ 화석은 부모가 각각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인 ‘혼혈’ 13세 소녀의 뼛조각으로 밝혀져, 두 인류의 교류가 생각보다 더 활발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도카 연구원팀은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 세 개와 유물, 지층 50군데의 연대를 다양한 측정 기술과 통계 기법을 동원해 상세히 측정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은 최소 약 19만 년 전에 동굴에 처음 등장했고, 13만~5만 년 전에도 여러 차례 동굴에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모두 약 14만~8만 년 전 사이에 집중됐다. 두 종의 혼혈인 데니소바 11번 화석은 10만 년 전 화석으로, 두 인류가 공존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연구팀은 데니소바인이 정교한 도구와 예술품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동굴에서 4만3000~4만9000년 전에 뼈나 치아를 깎고 뚫어 만든 바늘과 장신구(목걸이 등)가 출토됐는데,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에 현생인류가 데니소바 동굴을 방문한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빈 덴넬 영국 옥스퍼드대 고고학과 교수는 네이처에 기고한 논평에서 “데니소바 북서쪽 지역에 약 4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가 살았다”며 “현생인류 또는 현생인류와 데니소바인이 낳은 후손이 작품을 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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