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내에서도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RPA)'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RPA란 그동안 사람이 처리해왔던 업무 절차(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로봇을 활용해 자동화하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서 로봇이란 자동차 공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리적인 형태의 기기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형태의 로봇(Bot)이다. 신호 처리, 데이터 조작, 응답 트리거, 타 시스템과의 통신 등 기존에는 사람이 담당해야했던 기업의 반복적인 업무 절차를 이제 SW 로봇이 처리하는 것이다.
RPA를 도입함으로써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로봇이 단순 사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것에 따른 '인건비 절감'과 사람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것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다. 컨설팅 업체들에 따르면 RPA를 도입할 경우 기업에게 10~25%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금융을 비롯해 제조, 유통, IT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RPA를 도입했거나, 파일럿(실제 업무 절차 도입에 앞서 업무에 해당 솔루션이 적합한지 실험하는 것)으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KT, 신한은행, 소프트뱅크, AT&T, 도이치텔레콤 등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자사 업무 절차에 RPA를 도입한 상태다. 은행들은 여신, 퇴직연금, 부동산 등 다양한 업무에 RPA 시스템을 도입했고, 보험 업계 역시 보험심사, 마케팅, IT 운영 등에 RPA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기업의 업무에서 RPA를 적용하는데 가장 적합한 분야은 대규모 수작업이 반복적으로 처리되는 곳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사람(화이트 칼라)에 의해 수행되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업무야 말로 SW 로봇이 대신 처리하기 안성맞춤인 분야다. 때문에 기업 내부에선 RPA를 사무직 직원을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서'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IBM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구성원들이 전체 업무 시간에서 33%를 데이터 수집 및 분류에, 30%를 전문인력과의 상호작용 및 전문지식 적용에 쓰고 있었다. 전체 업무 시간 가운데 63%가 RPA를 적용할 수 있는 잠재적 자동화 영역이라는 뜻이다.
기업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RPA 시장 규모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랜스퍼런시마켓리서치는 전 세계 RPA 시장이 매년 60%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 역시 은행, 보험사, 이동통신사, 공익 기업 등을 중심으로 RPA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올해 말에는 매출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운데 60%가 RPA를 도입하고 2022년 경에는 전 세계 대기업의 85%가 어떤 형태로든 자사 업무에 RPA를 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기업들의 RPA 활용법
그렇다면 RPA를 도입함으로써 기업은 어떤 업무 자동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엑셀이나 ERP 전표 입력 등으로 대표되는 단순 반복작업을 SW 로봇으로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직원이 로봇에게 실행, 복사, 셀이동 등 단순 명령을 내리면 로봇이 이를 알아듣고 사전에 정의된 룰(Rule)에 따라 업무를 대신 처리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엑셀 등 문서 작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60~77% 가까이 절감할 수 있고, 단순 반복 업무 대신 보고서 검토나 개선 방안 고안 등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특정일에 급증하는 고객의 문의 메일을 내용별로 재빨리 정리하거나, 업무 시작전에 전날 수집된 데이터를 SW 로봇이 간단히 점검하고 이에 따른 결과 분석 보고서를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자동 송부하는 등 기존에는 사람이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단순 반복 업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국내의 한 대형 은행은 고객 불만 처리 절차에 RPA 기술 기반의 SW 로봇 85개를 투입한 후 연 150만 건의 불만 접수를 대신 처리했다. 이는 기존에는 230여명의 직원이 해야했던 업무를 SW 로봇이 대신 처리한 사례다. 이를 통해 불만 처리 비용을 기존 대비 30% 절감했고, 첫 상담에서 고객 불만을 해결하는 비율도 27%나 증가했다. 영국의 유통 기업은 SW 로봇이 홍수로 인해 상품 대금 납부가 늦어진 고객을 파악해서 연체료 부과를 자동으로 취소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순 업무 자동화를 넘어 기존에는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RPA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을 꼽으라면 역시 소프트뱅크를 들 수 있다.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1월 기업 분기 설명회(IR)에서 소프트뱅크 사내에 2000개 이상의 SW 로봇을 도입해 반복 업무와 잔업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소프트뱅크 전체 인력의 40%를 감원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단순히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인력의 업무를 재배치해 업무 효율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건비를 절감함으로써 서비스 비용을 낮춤으로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단순 반복 업무에서 해방된 직원들이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함으로써 더 나은 서비스가 발굴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손 회장이 이렇게 RPA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유는 뭘까. 소프트뱅크가 단순히 RPA를 도입하는 회사가 아니라 직접 RPA를 개발해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SW 소프트웨어 개발사이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싱크로이드(SynchRoid)'라는 자체 RPA를 개발해서 기업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국내의 한 이동통신사도 이 싱크로이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국내 최대의 IT 회사인 삼성전자도 업무 자동화를 위해 RPA를 도입했다. 올해 5월부터 내년까지 RPA에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해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올해 내로 100여개의 업무 자동화를 진행하고, 2019년에는 1000여개의 업무 자동화를 진행해 전사적으로 RPA를 확산할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직원들이 ERP 시스템에 일일이 데이터를 입력하던 수작업을 제거해 업무의 디지털화(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달성하는 것이다.
업계에서 RPA 도입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것이 신한은행의 'RPA ONE' 프로젝트다. 직원들의 업무량 경감을 목표로 올해 10월 완료된 이 프로젝트는 현재 6개 부서 13개 분야에서 매일 6000건 업무를 SW 로봇으로 대신 처리 중이다. 인력 감축보다는 매일 발생하는 대량의 수작업 업무를 줄여 직원들에게 할당되는 과도한 업무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진행했다. 신한은행은 전 은행 업무에 RPA를 확산시키기 위해 RPA 도입 및 운영 전담 조직인 '통합RPA실'을 2020년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KT 역시 RPA 도입 시범 적용을 완료하고 IT 기획실 주도로 전사적 확산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부터 보안관제 및 침입차단, IT통합관제, 로밍정산, 서식지 검증 4개 업무를 대상으로 RPA를 시범 적용했고, 연내에 120개 업무로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이동통신사, 금융사 등을 중심으로 RPA 도입이 활발하다. 미국의 이동통신사 AT&T는 직원들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사 차원의 RPA 도입을 추진 중이다. 2015년 HR 및 성과관리 분야에 RPA를 도입한 후 현재 약 1050개의 SW 로봇을 운영 중이다. 독일 도이치텔레콤은 고객 서비스 강화 차원에서 2015년부터 업무에 RPA를 도입해 현재 2300여개의 SW 로봇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온라인 서비스 요청 업무의 1차 응대 처리를 자동화해 요청 해결률을 32%에서 42%로 향상시켰고, 고객만족도 역시 120% 증가시켰다. 일본 다이이치 생명은 전 업무 영역에 RPA를 도입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재 110여개의 업무 자동화를 완료했고, 2022년까지 3000여개의 업무 자동화를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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