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척추동물 중 유일하게 피가 흰색인 ‘남극빙어’(Icefish)의 유전체(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빈혈과 같은 혈액질환에 대한 의학적 연구에 활용되거나 겨울철 한파로 양식어류의 폐사 등을 예방하는 산업적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극지연구소는 박현 극지유전체사업단장 연구팀이 남극빙어의 유전자 3만773개를 확인하고 차가운 물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적 특징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26일 밝혔다.
남극빙어의 피는 흰색이다. 이유는 혈액을 붉게 만드는 헤모글로빈이 없기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은 체내에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산소가 많이 녹아있는 남극 바다에서는 쓰임이 적어 사라진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빈혈을 평생 갖고 살아가는 셈. 또 남극어류는 일반 어류보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의 밀도가 높아 활성산소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남극빙어에 대한 연구는 미비했다.
연구팀은 지난 2014년 남극해양생물인 ‘남극대구’와 2018년 ‘드래곤피쉬’의 게놈 분석을 마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2종에 대한 게놈과 남극빙어의 게놈을 비교해 남극빙어의 유전적 특징을 찾았다.
활성산소를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NQO’는 일반 어류에서는 거의 없거나 미비하지만 남극빙어에서는 33개나 나타났다. 또다른 활성산소 억제 유전자 ‘SOD3’는 남극어류 가운데 유일하게 남극빙어에서만 3개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SOD3’는 1개씩만 존재한다.
영하 수온에도 얼지 않는 남극 어류의 결빙방지단백질(AFGP)에 대한 유전적 기원도 찾았다. 어린 치어 때부터 극저온의 바다를 견뎌낼 수 있는 ‘투명한 무세포 유전자’(Zona pellucida gene)가 남극빙어는 일반 어류보다 4배 이상 많은 131개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했다. 낮이나 밤이 하루종일 계속되는 백야와 극야를 겪으면서 생체시계와 관련된 일부 ‘주기 유전자’(period gene)와 ‘크립토크롬 유전자’(cryptochrome gene:청색광 반응에 관여)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확인했다.
김보미 극지연 박사는 “남극빙어의 생리적 특성은 빈혈 등 혈액질환에 대한 연구나 더 나아가 수면장애 등 생체시계 관련한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현 극지연 극지유전체사업단장은 “확인된 유전자 정보는 저온치료 같은 의학적 연구는 물론 겨울철 한파로 인한 양식 어류의 폐사 예방 등 산업적으로도 활용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26일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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