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로봇이 화두다. 한국에서도 정부 지원으로 KAIST와 성균관대, 고려대에 AI 대학원 설립이 결정됐다. 서울대도 데이터사이언스 전문대학원 설립을 선언했다. 미래에 AI와 로봇 연구를 선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이 분야에 뛰어든 세계의 주요 대학 연구소 수장과 석학에게 물었다. 이들은 15∼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소프트로봇 분야 국제학회 ‘로보소프트 2019’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대니얼라 루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CSAIL) 소장은 ‘데이터와 AI, 로봇의 융합’을 중요한 성공 요소로 언급했다. CSAIL은 114명의 교수와 500여 명의 박사후연구원 및 대학원생이 AI부터 로봇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세계 최대의 AI 연구기관 중 하나다. 루스 소장은 “기계는 결코 AI 또는 머신러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며 “물리적인 세계에 도움을 주는 로봇공학, 특히 인간과 친숙한 소프트로봇과의 결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루스 소장은 “한국은 알파고 경험으로 머신러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AI가 의사결정과 감정, 인식 등 ‘인간 같은 특징’을 담당하는 기계의 ‘지(知)’라면 로봇공학은 물리적 세계에 도움을 주는 기계의 ‘체(體)’, 머신러닝은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 AI와 로봇공학 사이를 연결해 주는 ‘덕(德)’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지, 덕, 체가 함께하듯 이 셋이 꼭 융합해야 한다는 비유다.
2000년대에 맨발로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 원리를 공학적으로 흉내 내 전 세계 공학계에 생물모사공학 붐을 일으키고, 지금은 몸속에 넣어 치료나 진단을 하는 ‘미니 로봇’ 분야를 선도 중인 메틴 시티 독일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연구소장은 ‘간섭 없는 정부 지원’을 중요 요소로 꼽았다.
시티 소장은 MIT CSAIL과 함께 AI와 로봇 분야 최고의 대학 연구소로 꼽히는 미 카네기멜런대 로봇연구소(CMU RI)에서 센터장으로 근무하다 2014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간섭이 없는 편인 미국조차 국립과학재단(NSF)이나 국립보건원(NIH)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이 따라온다”며 “이런 조건 없이 통 큰 연구비를 주는 환경을 찾아 독일에 왔다”고 말했다. 시티 소장은 “박사후연구원을 10배나 더 고용하고 고가의 장비를 자체 보유할 수 있다. 뛰어난 연구자에게 이런 지원은 큰 동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로봇과 소형 변신로봇 연구자인 제이미 백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규정의 정교함을 언급했다. 연구자들이 개발한 기술로 스핀오프(창업)할 때가 많은데, 관련 규정이 명확해야 헷갈리지 않고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로잔연방공대는 세계의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주중 하루를 다른 일에 활용할 수 있지만, 창업 등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면 추가로 더 쓸 수 있다”며 “다만 이 경우 그만큼 월급이 줄어든다. 이런 규정이 세밀한 부분까지 자세히 마련돼 있어 연구자의 판단을 돕고 효율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유럽의 대표적 소프트로봇 개발 프로젝트인 ‘옥토퍼스’ 책임자였던 체칠리아 라스키 이탈리아 산타나고등연구소 교수와 루스 소장은 연구자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로봇공학계에서 여성 연구자의 비율은 9%로 매우 낮다”며 “연구자의 다양성은 더 풍부한 답을 제공하고 새로운 능력을 찾게 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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