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WHO의 질병등록, 게임세는 정해진 수순인가

  • 동아닷컴
  • 입력 2019년 5월 27일 16시 32분


지난 5월25일,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가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키로 하면서 국내외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이용 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게임이용 장애에 ‘6C51’라는 질병 코드가 부여되었다.

이 ICD-11은 194개 WHO 회원국에서 2022년부터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또한 2025년에 ICD-11을 기준으로 KCD(한국표준질병분류) 개정안 논의가 예정되어 있다. 단, 논의도 전에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서는 WHO의 의견을 수용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세계보건기구 로고 / WHO 홈페이지 발췌
세계보건기구 로고 / WHO 홈페이지 발췌

이러한 WHO의 게임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록과 관련해 게임업계의 반발도 거세어지고 있는데, 여러 반발 중 가장 우려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게임세' 부분이다.

게임업계의 매출을 기반으로 직접세나 간접세를 걷는, 일명 '게임업계 삥뜯기'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WHO 발표 이후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지난 5월20일에 보건복지부에서는 '게임중독세'를 추진하거나 논의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보도자료를 내면서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그 말을 듣고 안심하는 업계인들은 거의 없다.

보건복지부의 발표는 '지금 당장'은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에 불과하며, 앞으로 얼마든지 '게임중독세'를 검토할 수 있고 또 과거의 행보로 볼 때 '게임중독세'를 추진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0월11일에 열렸던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를 떠올려보면 보건복지부가 이전부터 '게임중독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당시에 복지위 간사인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이 게임산업을 사행산업으로 규정하면서, "사행산업 사업자는 연매출 0.35%를 부담금으로 낸다.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바 있다. 이 질문을 풀이해보면 '게임산업도 매출 베이스로 돈을 내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정도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건복지부 산하의 '한국중독정신의학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을 포함한 '중독관리법' 통과와 '국가중독관리위원회' 설치가 반드시 입법화를 이뤄내야할 '숙원사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는 중독을 사업적으로 접근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공지 / 공식 홈페이지 발췌
한국중독정신의학회 공지 / 공식 홈페이지 발췌

실제로 이러한 중독관리위원회 소속 의사들은 이번 WHO 이슈와 관련하여, 일제히 게임중독의 관리 필요성에 대해 꼭 필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상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심인보의 시선집중' 등을 통해 "많은 연구들이 그동안 누적돼 와서 ICD-11에 포함된 것이다."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미국도 마찬가지다. 게임이용장애에 대해선 연구들이 많이 진행돼왔다. 과학적 증거가 적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외에도 보건복지부가 게임을 중독물질로 전제하거나 혹은 '게임중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5년에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게임중독 지하철 광고가 그것이다.

2015년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 / 게임동아
2015년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 / 게임동아

2015년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 / 게임동아
2015년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 / 게임동아

당시 보건복지부에서는 게임중독에 빠진 한 남성이 길에서 다른 사람을 게임 속 몬스터로 혼동하여 공격하는 것을 광고로 꾸몄는데, 이를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정신분열' 증세를 게임중독 증세로 표현했다며 잘못된 광고라는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또 이 같은 보건복지부의 억지 광고는 유튜브 등을 통해 퍼져나가 해외 언론들로부터 ‘대단히 바보스럽다’는 식의 다양한 조롱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게임=중독물'이라는 노력을 해온 보건복지부의 행보와 더불어 게임업계가 '게임세'가 정해진 수순이라고 예측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지난 2014년부터 게임업계의 매출을 베이스로 한 게임규제 법안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게임세 관련 법안들 / 게임동아
지난 2014년 게임세 관련 법안들 / 게임동아

이 법안들은 명분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게임업계에서 매출 베이스로 돈을 받아서 별도의 기관이 관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법안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의될 수 있으며, 게임의 질병코드 등재를 바탕으로 명분이 쌓이면 최악의 경우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도 중독관리의 주무부서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고, 여성가족부 입장에서도 지난 2010년에 있던 '경륜-경정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으로 연간 240억 원 정도의 기금이 줄어들게 된 상황에서 이러한 '게임세' 도입을 주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게임중독 이미지 예시 / 동아일보DB
게임중독 이미지 예시 / 동아일보DB

결론적으로 WHO의 이슈는 '게임세' 도입으로 이어져나갈 확률이 크며, 국내 게임업계 또한 '게임=중독물'이라는 낙인 효과와 함께 다양한 부정적인 효과들이 생겨날 수 있다. '마케팅 제한'과 함께 '우수 인력의 유출' 등이 당장 우려되는 부분이며, 이덕주 서울대 교수팀은 2023년부터 3년간 국내 게임 산업의 경제적 손실이 11조 원 이상이 될 거라고 예측 자료를 내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일이 적지 않은 파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WHO의 의견을 과대 해석해서 정부가 게임 규제의 근거로 삼는 일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게임업계에 가장 큰 시련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게임업계가 사면초가에 놓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개척해야할까. 문화부와 게임산업협회, 그리고 수많은 게임업계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마련해야할 때다.

동아닷컴 게임전문 조학동 기자 igela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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