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는 인간의 놀이를 경쟁, 우연, 모방, 현기증의 네 개의 범주로 분류했다.
많은 놀이는 스포츠나 체스처럼 규칙이라는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 승부가 판가름나지만 우연적인 요소로 앞서던 사람이 한 순간에 역전당하기도 하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소꿉놀이나 코스프레는 상상과 모방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회전목마나 롤로코스터 같은 현기증 놀이는 순간적인 아드레날린의 흥분을 추구한다.
198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보드게임 ‘블루마블’은 어떤 땅을 사고팔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해 최고의 수익을 겨루는 경쟁놀이의 형태지만 주사위를 던지고 황금열쇠를 뽑는 우연놀이 요소들로 인해 운 나쁘게 무인도에 갇힐 수도 있고 운 좋게 우주여행을 할 수도 있다. 동시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하는 사업가의 기분을 맛보는 모방놀이로서의 매력도 컸다. 이처럼 하나의 게임 안에 다양한 요소가 결합될 수 있는데 최근에 유행하는 온라인 모바일 게임들의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들을 통해 이제는 현기증 놀이 요소들까지도 가까이서 즐길 수 있게 됐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경쟁 놀이와 흉내 놀이는 목적 지향적인 하향식 정보처리(goal-directed top-down processing)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에 반해 우연 놀이와 현기증 놀이는 자극 반응적인 상향식 정보처리(stimulus-driven bottom-up processing)로 인한 대뇌피질하 영역(subcortical area)의 활성화가 특징적이다. 따라서 똑같은 카드 게임을 하더라도 이용자가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뇌는 다른 패턴으로 활성화가 일어난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게임은 뇌를 학습시키고 자극시킬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게임의 요소들이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게임들에 내재돼 있는 자극 반응적인 요소들에만 과도하게 집착한다면 게임은 편향된 방향으로 뇌의 형태적 기능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5월 20일부터 열린 스위스 제네바 정기총회에서 ‘게임 사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는 게임의 편향적 사용단계로 진행해버린 사용자들에 대한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체계의 필요성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놀이터는 우리손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온라인 모바일 게임 세상의 실상은 단순히 즐김과 과함으로 나누기엔 복잡하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데 훨씬 뛰어났다’는 유발 하라리의 지적을 곱씹어 본다. 디지털 기기들의 범람 속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기기들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건강한 놀이터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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