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게임 중독을 두고 학계, 정부 기관 및 사회 단체 등 사회 곳곳에서 치열한 설전이 오가고 있다.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코드 등록으로 국내 사회에서 해묵은 논쟁이었던 게임 중독 논쟁이 정점을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그리고 카톨릭대학교 및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게임이 중독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WHO가 ICD-11에 게임 이용 장애를 수록한 것은 세계 유수의 학자들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도 게임에 대한 유해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특히, 각종 사례를 통해 분명 게임 중독이 존재함에도 이를 게임 업체들의 일방적인 경제 논리로 곡해하는 등 게임 중독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게임 산업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그리고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92개 단체) 등의 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임은 요인일 뿐 중독 규정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측은 칼로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그 사람을 탓하지 칼을 탓하지 않는 것처럼, 게임은 단순히 도구일 뿐 그 원인이 되지 않으며, 기존 중독 요소를 게임에 억지로 대입시킨 것은 물론, 게임 중독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은 중독이다>
게임이 중독 물질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번 WHO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며, 게임이 중독과 관련된 증세를 확연히 드러낸다고 말한다. 실제로 국제 사회에서 WHO가 지닌 위치는 세계 의학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높으며, ICD는 이번 ICD-11이 무려 20년 만에 개정되었을 만큼 전세계 전문가 학자들의 오랜 토론 등을 통해 제정되는 질병분류 기준이기도 하다.
때문에 WHO의 이번 결정은 ‘게임 이용 장애’를 공식화 함으로서 그 동안 치료가 힘들었던 게임 중독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를 확실하게 규명하고, 증세에 따른 치료를 진행해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게임에 과도하게 몰두해 일상생활에서 게임을 많이 한다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 아닌 학교를 결석하거나,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사회활동을 모두 내팽겨 치고 게임에만 몰두해 중독센터를 찾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이에 대한 중독 치료를 진행하고, 관리해야 또 다른 사회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즐거움을 주는 모든 행위나 도구에 중독될 수 있지만, 신체적 고통을 동반하거나 상당한 준비물과 함께할 인원을 모아야하는 스포츠에 비해 게임은 혼자서 너무나 쉽게 과몰입하게 되며, 통제력이 부족한 청소년기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게임의 자극이 너무 크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 중 하나다.
게임 중독 코드가 아이들을 정신병환자로 내몬다는 주장에 대해 WHO 행위중독 대응TF 한국위원을 맡고 있는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 이해국 교수는 신체나 정신의 병이든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이며, 정신병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담긴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정신병 환자에 대한 그릇된 낙인 때문에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게임 중독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보건복지부도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근호 과장은 지난 5월 진행된 KBS열린토론에서 “ICD-11개정 전 미국의 DSM-5에서 먼저 게임 이용장애를 논의했는데, 이 이후로 미국 국립도서관에서 색인 검색을 해보니 1년에 200개 이상의 게임이용장애의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가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는 측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먼저 ICD-11에 대한 학자들의 공개 토론 논문을 확인할 수 있는 'AKADEMIAI KIADO'에서는 ICD-11의 게임 이용 장애 항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내는 학자들의 연구 토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옥스포드 인터넷 연구소의 앤드류 쉬빌스키 박사가 작성한 ‘ICD-11 게임 장애 신청서에 대한 학자들의 공개 토론 논문’에 의하면, ICD-11의 게임 이용 장애 항목은 중독 물질과 도박 중독 기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게임에 대한 증상과 평가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토론에 참여한 약 26여명에 달하는 학자들 중 상당수가 게임 이용 장애를 형식화할 경우 의료, 과학, 공중 보건, 사회, 인권 등의 다양한 분야에 부정적인 여파가 퍼질 것이며, 건전한 게이머에게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공중 보건 자원 낭비가 발생할 수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이번 ICD-11의 게임 이용 장애 코드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임 중독 찬성 측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게임 중독 논문 수에 대한 의문점도 제시됐다. 실제로 지난 5월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게임 중독, 게임 과몰입 등을 다룬 국내외 논문 614개 중 중국이 85개, 미국이 83개, 독일이 64개, 호주가 38개였지만, 한국에서 나온 논문이 91개로 13.9%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더욱이 세계 정신 의학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논문 중 54.2%만 게임 이용 장애가 존재한다고 추정한 것과 달리 국내 논문의 경우 전체의 89%가 게임 과몰입 현상 즉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중독 찬성 측의 근거 중 하나인 게임 중독 관련 논문의 수가 한국이 가장 많은 셈이다.
게임 이용 장애가 특이한 장애나 문제가 아닌 일시적인 상황이라는 연구도 존재한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정의준 교수는 지난 4월 진행한 NDC 2019 강연서 2014년부터 4년간 청소년 2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매년 60%에 달하는 절반 이상의 게임 과몰입군에 있는 청소년들이 특별한 조치가 없음에도 일반군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특히, 정 교수는 조사 결과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고, 학업 스트레스가 훨씬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으며, 4년간의 조사 기간 동안 과몰입 군을 계속 유지한 청소년은 고작 1.4%에 불과할 정도로, 청소년은 특별한 조치가 없어도 과몰입 군에서 정상군으로, 또 그 반대로 변화하는 결과를 나타내 게임이 질병을 유발한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임 중독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적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게임 이용장애가 질병으로 인정될 경우 합법적인 게임물에도 부담금관리법 제3조 및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제2조 및 제14조의2 법 개정을 통해 예방, 치유와 센터 운영 등을 이유로 부담금, 수수료 등이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새누리당 비례대표였던 손인춘 전 의원이 게임 매출의 1%를 부담금으로 징수하는 법안을 발의한바 있으며, 같은 당 신의진 전 의원 또한 게임을 마약과 같은 선상에 놓고 치유센터 설립을 골자로 한 게임중독법을 발의하는 등 이른바 ‘게임세’가 구체화된 경우도 존재한 바 있다.
아울러 ICD-11의 ‘게임 이용 장애’ 코드가 등록된 이후 몇몇 한의학 병원에서는 침과 한약 그리고 추나, CST 등의 치료로 청소년들의 뇌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치료 클리닉을 운영 중이며, 이 클리닉의 비용은 월 수 십 만원, 기간에 따라 수 백 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수준이다. 정신의학계가 게임 중독을 치료와 재활을 돕는 의학 목적이 아닌 또 하나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지난 6월28일에 열린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만약 국내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10대 청소년 중 많은 수가 게임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꼬리표는 향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 시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발표하는 등 정부 기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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