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AI 활용 플랫폼 2년內구축”
개발 시간 단축-비용절감 등 장점… 세상에 없던 소재 찾아내기도
일본과의 무역 갈등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국내 기업과 연구소를 집중 지원해 핵심 소재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국산화를 앞당기겠다는 긴급 대책을 내놨다.
소재 개발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가상 시뮬레이션 연구개발(R&D)’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소재 선정부터 검증까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가상시험으로 소재를 개발하는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2021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소재 연구는 소재를 발굴하고 이를 합성한 후 물성을 검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소재 개발에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재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하고 물성을 예측하는 소재 연구가 가능해지고 있다.
소재는 더는 실험실에서만 발굴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컴퓨터에서도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는 일들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노준석 포스텍 기계공학과 및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15일 AI 기술인 딥러닝을 이용해 투명망토나 스텔스 잠수함 등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메타물질을 발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정명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컴퓨터 계산을 통해 저렴한 메탄가스에서 고부가가치 화학 원료인 에틸렌을 얻어내는 촉매를 발견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원자구조를 설계하는 시뮬레이션으로 여러 물질을 빠르게 탐색해 한 달 걸릴 실험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였다.
AI가 세상에 없는 소재를 찾아내는 일도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누바브 자인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팀은 AI에게 재료연구 논문 초록 330만 개를 학습시킨 뒤 새로운 열전소재를 찾아냈다는 연구결과를 지난달 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AI로 찾아낸 재료를 AI가 스스로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험 설계와 진행을 모두 AI가 하는 셈이다. 티머시 제이미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부 교수팀은 8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AI가 수백만 건의 데이터를 학습해 15개의 약물 물질 후보를 추려내고 AI가 로봇팔을 휘둘러 직접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 등 소재 선진국은 이미 AI를 소재 발굴에 활용하기 위한 소재 데이터를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MGI)’ 국가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인간 게놈 지도를 만들어 생물학 연구에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소재도 데이터베이스화해 첨단 소재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유럽도 소재 빅데이터 구축을 위해 2015년 ‘희귀 소재 발견(NOMA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빅데이터 분석 도구와 소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일본도 빠지지 않는다. 일본물질재료연구소(NIMS)는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 지원으로 ‘정보 통합 물질·재료 개발 이니셔티브(MI2I)’를 2015년 추진했다.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로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자들 컴퓨터에 남아 있는 연구 데이터를 통합해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7년 연구데이터 지식자산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지만 아직 이렇다할 소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지 못했다. 이광열 KIST 기술정책연구소장은 “소재 분야에서는 데이터가 연구자들의 PC에 흩어져 있고 활용될 기회가 전혀 없다”며 “이것들을 하나하나 모아야만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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