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와 양고기 등 붉은 육류에는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아 과다하게 섭취하면 심혈관질환이나 대사증후군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붉은 육류가 건강 문제를 넘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도 지목됐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전 인류가 붉은 육류 섭취를 줄이고 식물성 식단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은 8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쇠고기 대신 식물성 패티를 넣은 햄버거를 출시하며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동참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8년 기준 전 세계 1만7796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 업체가 식물성 패티를 넣은 햄버거를 출시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0차 총회에서는 전 세계 과학자 107인이 내놓은 ‘기후변화와 토지에 대한 특별보고서’가 채택됐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고 통곡물과 채소, 과일 위주의 식물성 식단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또 식물성 식단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상승한 수준으로 세계 평균기온을 유지하는 데 인류가 들여야 하는 노력의 20%를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IPCC가 채택한 보고서는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조사한 통계 결과를 인용했다. 전 세계 축산업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7.1Gt(기가톤·1Gt은 10억 t)으로 전체 온실가스의 14.5%에 해당되는데 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3분의 2에 달한다. 소와 염소, 양 같은 반추동물은 다른 동물에 비해 메탄가스를 더 많이 내뿜을 뿐 아니라 사료나 사료를 생산하는 농사에 쓰이는 비료를 만들 때에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축산업을 위한 산림 파괴도 온실가스 증가에 한몫한다.
IPCC가 채택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식물성 식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붉은 육류 섭취를 줄이면 줄일수록 더 좁은 면적의 토지에서 더 많은 식량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도 저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초 마코 스프링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건강학과 선임연구원이 이끄는 ‘이트랜싯(EAT-lancet) 위원회’는 국제학술지 ‘랜싯’에 2년간 실린 연구 결과 357건을 바탕으로 ‘표준 식물성 식단’을 내놨다. 2050년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대비하고 기후변화 가속화를 막기 위해 연구한 결과다.
표준 식물성 식단에는 식품별 하루 섭취량이 나와 있다. 채소 300g, 과일 200g, 콩류 75g, 견과류 50g, 생선 28g, 달걀 13g, 우유 250g, 붉은 고기 14g, 닭고기 29g 등이다. 특히 붉은 고기는 기존에 알려져 있던 일일 섭취량과 비교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위원회가 국가별로 많이 섭취하는 식품을 분석한 결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표준 식물성 식단보다 붉은 고기는 약 4배, 밥이나 빵은 2.5배 더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제품이나 과일 섭취량은 기준치를 크게 밑돌고 견과류는 거의 먹지 않았다.
스프링먼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인류가 현재 수준으로 붉은 육류를 섭취할 경우 2050년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금보다 50∼90% 증가할 전망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표준 식물성 식단에 따라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 섭취량을 늘리면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29%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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