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 기간 중 한 장의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세포가 저산소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과정을 밝힌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피터 랫클리프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가 199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보냈다 퇴짜를 맞고 받은 편지 사진이다. 랫클리프 교수가 이런 쓰디쓴 경험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연구의 배경이 되는 질문이 언젠가 꼭 풀어야 할 ‘궁극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던진 문제를 풀었고, 값진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다른 나라를 뒤쫓기만 하던 한국의 기초과학도 최근 이런 궁극의 질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달 17일 대전 유성구 KAIST 학술문화관에서는 교수와 학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KAIST가 던지는 궁극의 질문’ 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 4∼7월 KAIST의 대학원생과 학부생들이 보낸 680개 질문 가운데 11개가 이날 최우수상, 31개가 우수상을 받았다. 참석자와 수상자들은 “호기심과 열정을 담은 궁극의 질문과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백원옥 KAIST 연구기획센터 교수는 “훌륭한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 출발한다”며 “평소 학생들이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창의적인 연구 문화를 확산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날 최우수 질문자 중 한 명에 뽑힌 이어진 씨(문술미래전략대학원 박사과정)는 “나무에 신경계를 이식하는 것이 가능할까”란 질문을 제안해 최우수 질문 중 하나로 꼽혔다. 이 씨는 “신경계가 이식된 식물이 움직이면 그 생물이 식물일지, 동물로 분류할지 궁금하다”면서 “인공신경이나 두뇌가 이식된 식물이 나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마음’이 탄생할까”라는 철학적 의문을 던졌다.
생활에서 얻은 다소 엉뚱한 질문도 나왔다. 안호진 씨(화학과 박사과정)는 “빨지 않아도 되는 옷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옷은 더러워지면 빨아야 한다는 현재 통용되는 개념을 바꾸자는 것이다. 안 씨는 “옷을 빨지 않아도 되면 세제 사용에 따른 오염 문제도 해결된다”며 “몸에서 발생한 지방과 질소산화물, 외부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미생물을 제거하는 촉매를 개발하면 빨지 않아도 늘 깨끗한 옷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융 씨(신소재공학과 석사과정)와 구본승 씨(화학과 박사과정)는 수만 년 뒤까지 정보를 전할 매체 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인류의 기록에 대한 속 깊은 고민을 질문에 담았다. 두 사람은 각각 “기록을 영원히 남길 방법은 무엇일까”, “영구 저장매체는 존재할까”란 질문을 내놨다. 구 씨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현존 자료에서 옛 사람들이 쓰던 말을 복원할 수 있을까”란 질문도 최우수 질문에 선정되며 2관왕에 올랐다. 구 씨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노래 가사와 발성기관 구조 변화를 분석하면 원형 발음에 가까운 소리를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광현 KAIST 연구처장은 “연구는 종종 실패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과학자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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