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밤새 가슴 찢는 고통…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최고의 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0일 03시 00분


9일만에 퇴원한 부산 환자 투병기

“미국 등지에선 환자(patient)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은연중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사람을 의미하는 확진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부 겸임교수(48·사진)는 지난달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산의 47번째 코로나19 확진자로 외부에 알려졌지만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명문 사립인 라몬유 대학의 마케팅 전공 교수다. 부산대 특강을 위해 지난달 초 미국을 거쳐 고향인 부산에 입국했다가 갑자기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매주 4, 5일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바이러스의 공격을 피하진 못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입원 9일 만인 이달 5일, 두 차례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현재 자율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박 교수는 9일 “의료진에게 감사를, 환자에게 용기를 나누고, 사회에 경험을 나눔으로써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동아일보에 이메일로 A4용지 6장 분량의 투병기를 전해왔다.

박 교수가 몸에 이상을 느낀 건 부산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달 21일경이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목 넘김이 불편하고 인후통과 함께 마른기침이 3번 정도 나왔다. 몸도 욱신거리기에 운동 후유증인가 싶어 이틀간 푹 쉬었다”고 했다. 예상과 달리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이튿날 새벽엔 숨쉬는 게 힘들어졌다.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동래구의 온천교회에서 확진 환자가 많이 나오는 데 놀란 그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대동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검사를 위해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중 급기야 정신을 잃고 쓰러져 머리에 찰과상까지 입었다. 그는 “치료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난 일주일간 제가 만난 모든 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상세히 알렸다. 모든 상황이 너무 걱정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튿날 양성 판정을 통보받고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고신대복음병원 음압병실로 옮겨졌다. 그는 “입원 후 처음 이틀간은 약 부작용 때문인지 몹시 힘들었다. 너무 허기졌지만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해 고통이 극심했다. 기계로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숨 쉬는 건 나아졌지만 무거운 철판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과 오한 때문에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수시로 들러 ‘마음을 편히 가지라’며 다독이는 의료진의 친절에 그는 삶의 의지를 북돋았고 몸은 서서히 회복됐다. 철판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에 이어,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강도로 가슴 통증은 차츰 완화됐다. 입원 초기부터 미열이던 체온이 치료 도중 고열로 악화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박 교수는 “두꺼운 보호복과 장갑, 고글을 착용한 의료진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실수 없이 한 번 만에 주사를 놓으려 애쓰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누군가 병실에 들어올 수 없었기에 치료 후엔 식사를 도와줬고 청소까지 직접 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뒤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코로나19로 벌어지는 한국의 상황을 확인했다. 자신과 관련된 기사도 검색했다. 그 과정에서 무교인 자신을 신천지 교인이라고 의심하는 인터넷 기사 댓글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박 교수는 “환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라며 실명을 공개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환자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불안한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강해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치료를 받는 중에 최근 접촉했던 가족, 지인 등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가장 좋은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몸도 빨리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부산#확진환자#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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