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장에선 상당히 유명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만 유독 인지도가 떨어지는 브랜드, 혹은 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선 상당히 지명도가 높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존재감이 옅은 브랜드가 상당수 있다. 이런 업체들은 기술력이나 제품 개발 능력은 제법 있는데 상대적으로 홍보에 덜 투자해서, 혹은 한국시장 진출이 늦거나 이미 시장을 선점한 토종업체들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업체 스스로 OEM(주문자상표부착) 사업에 주력하기 때문에 일부러 자사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는 특히 가전 및 IT 관련 업계에서 자주 보인다.
보쉬(BOSCH) :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가전 부문의 강자
한국에서 '보쉬(BOSCH)'는 전동공구나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독일계 기업이다. 특히 보쉬의 전동드릴은 전문가용 뿐만 아니라 아니라 가정용 시장에서도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 보쉬라는 브랜드의 사업 영역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히 넓다. 산업 장비 외에도 차량 정비, 업무처리 아웃소싱(BPO) 사업, 소프트웨어, 그리고 생활가전 등의 다양한 사업을 한다. 기업의 역사 역시 134년에 이를 정도다.
특히 보쉬는 유럽 최대의 전자제품 제조그룹 중 한 곳인 'BSH 홈 어플라이언스'를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보쉬 외에 '가게나우(GAGGENAU)', '지멘스(SIEMENS)'등의 브랜드가 포함되며 냉장고, 세탁기 등의 생활가전 시장에서 글로벌 톱5, 유럽에선 1위의 점유율을 보유했다. 다만, 한국에서 생활가전 브랜드로서 보쉬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로 대표되는 터줏대감들의 입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 진출 시기도 2017년으로 늦은 편이다. 한국에는 보쉬의 세탁기, 냉장고, 의류건조기, 식기세척기, 청소기, 블렌더, 커피머신 등이 출시, 유럽 프리미엄 가전임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며 판매 중이다.
가민(Garmin) : 스포츠 기능 충실한 스마트워치 시장의 실력자
스마트워치 등으로 대표되는 웨어러블 시장에 국내에서 유명한 건 '애플워치' 시리즈의 애플, '갤럭시 워치' 시리즈를 선보인 삼성전자 등이다. 그 외에 가성비가 우수한 스마트밴드를 앞세운 샤오미도 저가형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를 보면 '가민(Garmin)'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2018년 기준(IDC 발표), 가민은 전세계 웨어러블 시장에서 애플, 핏빗, 샤오미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2016년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에선 가민이 애플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가민은 본래 1989년에 미국에서 창업한 GPS, 내비게이션 전문기업이었다. 특히 GPS 시스템 시장에선 수 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가민의 웨어러블 기기들은 GPS에 기반한 위치 추적 기능이 뛰어난 스포츠 특화 제품이 눈에 띈다. 최근 가민은 스포츠 기능을 강조한 '포러너' 시리즈 외에 다양한 사용자층을 노린 '비보' 시리즈, 그리고 프리미엄급 제품임을 강조하는 '페닉스'시리즈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티피링크(TP-Link) :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계 1위 무선 공유기 브랜드
'티피링크(TP-Link)'는 1996년에 중국에서 설립된 기업으로, 수년간 세계 무선(와이파이) 공유기 시장에서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이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는 압도적이다. 티피링크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대단히 우수한 가격대성능비다. 심지어 1만원대에 팔리는 모델도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해 무난한 성능과 내구성을 제공하고 있어 저렴한 비용에 무선 인터넷환경을 꾸리고자 하는 알뜰파 소비자들에게 호응이 얻고 있다.
다만 한국시장에선 아이피타임(ipTIME) 브랜드로 유명한 EFM네트웍스의 제품이 보급형 공유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고급형 시장은 넷기어, 에이수스 등의 선호도가 높다. 티피링크의 한국 시장 진출은 2013년부터였는데, 진출 시기가 너무 늦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중국브랜드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편견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상태다.
클레보(Clevo) : 그 브랜드의 그 노트북, 알고 보니 여기서?
대만의 컴퓨터 제조사 '클레보(Clevo)'는 1983년에 설립되어 1987년부터 PC 생산을 본격화한 전통 있는 기업이다. 세계 50여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고, 2004년에 세계 최초로 인텔 듀얼코어 노트북을 생산했으며, 2013년에 181만대의 판매기록을 달성하는 등의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회사의 역사와 규모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는 매우 낮다. 특히 일반 대중 중에서 클레보라는 컴퓨터 브랜드를 아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회사는 사실상 OEM/ODM 전문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중 상당수는 반조립 상태인 ‘베어본’ 형태로 판매된다. 이런 베어본 PC는 일부 부품(CPU, 메모리, HDD 등)을 끼우기만 하면 완제품이 된다. OEM 고객사들은 클레보의 베어본을 사와서 자유롭게 사양을 구성한 뒤 자사 상표만 붙여서 팔면 되기에 비교적 간단히 PC 판매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한국에선 한성컴퓨터, TG삼보, 현대멀티캡, 주연테크 등이 클레보에서 생산한 일부 제품을 자사 브랜드로 판매한 바 있다.
토세(Tose) : 40년 넘게 하청 제작 외길, 게임업계의 '카게무샤'
일본의 '토세(Tose)'는 1979년에 설립된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 업체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총 2,000여개에 이르는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회사의 이름으로 정식 출시된 소프트웨어는 찾아볼 수 없다. 40여년 동안 오로지 다른 회사 소프트웨어의 하청 제작만 전문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주도해서 개발했거나 일부 개발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게임 소프트웨어는 '바이오 하자드 제로', '슈퍼로봇대전 MX', '극마계촌', '드래곤퀘스트 몬스터즈 조커' 등 다양하다. 닌텐도나 캡콤, 스퀘어에닉스, 반다이남코 등의 유명 브랜드에서 출시한 게임 중 상당수가 토세 개발진의 손을 거쳐 개발되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세는 자사의 브랜드를 내세우거나 자사가 개발한 게임의 저작권을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고객사들의 신뢰가 높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주인을 대신해 활약한다는 일본의 '카게무샤'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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