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세그리티’는 접는 우산이나 저절로 펼쳐지는 텐트처럼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는 대형 구조물을 뜻하는 공학용어다. 필요할 때 스스로 움직여 구조물을 형성하거나 변형돼 골격과 구동기(근육)가 함께 결합한 일종의 로봇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상탐사용 로봇을 안전하게 화성에 내려보낼 때 적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난제로 여겨지고 있다.
박주홍 포스텍 창의IT융합공학과 교수는 이달 22, 23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개최된 ‘한국 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텐세그리티 로보틱스 기술을 활용하면 재난 때 순식간에 피난 공간을 만들거나 필요할 때 빠른 시간에 초대형 구조물을 세울 수 있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팀은 이날 텐세그리티를 이용해 매우 가볍고 제작비가 적게 들면서 거대하고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제안했다. 현재 대부분의 텐세그리티는 직선의 구조물을 이용해 제작된다. 박 교수는 인체의 갈비뼈처럼 곡선을 지닌 부재를 활용해 내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텐세그리티 기술을 연구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이 기술은 재난 상황에서 안전한 거주지가 될 대피처나 대형 건축 구조물을 제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며 “드론이나 자동차, 초고속열차 등과의 거센 충돌로 인한 충격에도 안전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변신로봇도 가능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상상력 넘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독창적인 난제 해결 과제로 제시됐다. 우주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 독창적이고 새로운 관측 임무나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돌리는 과학 연구는 물론이고 생태환경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식물과 대화하는 기술처럼 인류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삶의 질을 높일 도전적인 연구들이다.
오웅성 홍익대 스마트도시과학경영대학원 교수는 식물에 센서를 설치하고 음파로 나무의 수액 흐름을 측정한 뒤 이 데이터를 해석해 나무와 생태계의 건강을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아직까지 아이디어 단계지만 식물과 소통하고 나아가 식물을 통해 인간의 신체 능력을 증강시키는 ‘트랜스 휴먼’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호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단위의 미시세계부터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센티미터(cm)나 미터(m) 단위까지 모두 적용되는 자기조립기술을 제안했다. 보통 단위가 바뀌면 물리적 환경이 바뀐다. 나노의 세계에서는 입자의 결합이 수소 결합과 같은 화학적 결합에 좌우되지만, 그보다 큰 세계에서는 정전기력이나 마찰력에 좌우되는 식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규모를 넘나들며 결합을 제어하는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거의 없다. 김 교수는 “입자 하나하나는 기능이 제한적이지만 입자들을 모으면 훨씬 강력한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는 ‘창발성을 지닌 기계’의 등장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영화 ‘터미네이터2’나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로봇이나 기계 장치, 약물 전달체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류 지식의 지평 넓힐 과학연구에도 도전
우주 팽창과 관련된 ‘허블상수’라는 값은 가까운 은하가 지구에서 멀어지는 속도를 측정해 구한 값과, 우주 초기의 빛을 이용해 먼 우주에서 구한 값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이는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는 우주 기원 및 진화 이론인 표준우주론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기초과학 문제다. 2017년에 과학자들이 일부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2016년 세계 과학자들과 중력파 검출에 나선 김정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는 “중력파를 관측하고, 동시에 전자기파 관측 장비를 개선하거나 추가로 확보해 기존보다 정확히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면 허블상수를 통해 기존 이론이 잘못됐는지 또는 측정 방법에 문제가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 주도한 연구로 우주에 대한 인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돌리는 기술과 인공 광합성 기술, 노화에 따른 근감소증을 치료할 방법 등 세상에 한 번도 선보인 일이 없던 도전적인 연구 주제가 여럿 제안됐다.
이날 행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이 추진한 ‘과학난제 도전 융합연구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 연구자가 집단지성을 통해 세상에 없던 질문을 던지거나 신기술을 제안하고 이를 과학자와 공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 보자는 취지다.
성창모 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장(고려대 특임교수)은 “연구개발 성공률이 98%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만큼 난제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실패 위험이 큰 연구를 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은 올해 3월까지 전국 과학자와 공학자들에게서 92건의 아이디어를 접수했다. 이 가운데 선별된 15건이 이달 22, 23일 개최된 온라인 콘퍼런스를 통해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갖는 다른 연구자들도 아이디어를 보태거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2건, 내년 3건을 최종 선정하고 2025년까지 과제당 최대 90억 원씩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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