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총리 주재 제105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이 발표됐다.
이 발표에서는 ▲적극적 규제·제도 개선을 통한 혁신성장 지원 ▲창업~해외진출까지 단계별 지원 강화 ▲게임의 긍정적 가치 확산 및 e스포츠 산업 육성 ▲게임산업 기반 강화 등 크게 4대 추진 전략과 16개 핵심과제가 제시됐고, 전략·과제별로 교육부, 과기정통부,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사업 추진에 힘을 쓰겠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실제로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게임업계를 세밀히 연구한 모습이 눈에 띈다. 내용수정 신고제도 개선이나 비영리게임 등급분류 면제, 신기술 기반 게임 고료 등급분류 기준 마련 등은 현 시점의 게임시장을 제대로 연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 해외 사업자의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 과몰입 대응 체계 개선,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공개 법제화 등 과거와 달리 문제점을 콕 집어낸 부분도 보인다.
섣불리 진흥하겠다고 공수표를 날리던 과거와 다른 모습에, '정말로 게임 진흥이 이뤄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마저 생길만큼 이번 게임진흥 발표는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발표에 대해 정작 게임업계는 뜨뜨미지근한 모습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과감한 규제혁신으로 게임산업의 성장을 돕겠습니다. 게임콘텐츠의 신고·심의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습니다." 라고 했는데도, 오히려 정부가 게임업계에 개입을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기류 마저 포착된다.
정부의 기대와 다른, 염세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게임업계의 반응.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그동안 근 15년 가까이 정부가 '게임=진흥'이라는, 말뿐인 공수표를 날려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는 2007년 게임산업진흥 제 1차 중장기계획, 2008년 12월 게임산업진흥 제 2차 중장기계획, 2009년 문화콘텐츠산업 10대 전망, 2014년 '여가부와의 상설협의체' 등 끊임없이 게임산업의 진흥을 발표해왔다. 또 수천억 원을 들여 게임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진흥 정책 중에 제대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구체적 계획없이 두루뭉술한 진흥책은 표류했고, 타 부서와 협력도 안되었다. 그러는동안 각종 규제책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실효성있게 게임업계를 압박했다.
대표적으로 2011년도에 셧다운제가 도입되었고, 산업은행 등을 비롯해 각종 게임 쪽 투자가 완전히 막혔으며, 2013년에는 신의진 전 의원의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 박성호 전 의원의 '콘텐츠 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 손인춘 전 의원의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 등 게임규제와 관련된 법들이 동시에 발의됐다.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한술 더 떠서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면서 게임업계를 옥죄었다.
여기에 게임진흥법은 게임규제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덕지덕지 규제가 붙었고 2015년에 보건복지부는 '게임은 마약'이라며 지하철 광고를 서슴치않았다. 이처럼 게임업계는 속절없이 병들어갔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자는 없었다.
이번 발표 내용도 그런 기조로 살펴보면 과거와 다르지 않아보인다. 여전히 여러 진흥 계획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인지가 나타나있지 않은데 반해 규제책은 선명하다.
일례로, 문체부의 게임계정 투자 예산안 증액 예고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모태출자 비율을 어느정도 선까지 끌어올릴 예정인지 구체적인 공지가 없다.
2020년 1차 모태 정시출자에서도 게임 분야에 대한 모태 출자 비율은 50%로 5G 기술융합 콘텐츠와 더불어 가장 낮은 출자 비율을 기록 하였으며, 금액으로 따져도 콘텐츠 IP 부분과 함께 150억 원으로 가장 낮았다.
영화 계정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영화 계정은 그동안 매년 펀드를 공고한 중저예산 한국영화펀드에 대한 모태 출자비율이 67%에 이르렀으며, 2020년 금년 처음 등장한 한국영화 메인투자 펀드의 모태 출자 비율도 70%에 달한다. 2개의 영화 펀드에 대한 모태 출자액도 310억 원으로, 150억 원에 그치고 있는 게임 계정의 2배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영화, 관광, 스포츠, 환경, 해양 등 위원회가 갖추어진 계정들은 모태 출자 비율이 높고 펀드 출자 빈도가 높아 안정적인 투자펀드 조성이 가능한 반면, 게임 계정은 문체부에서 일괄적으로 추진하는 출자 사업이라서 이번 정부의 진흥안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또 이번 발표에서 절반에 가까운 정책들이 경찰청, 교육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과 반드시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도 문제다.
다른 부처들이 이번 발표 내용과 관련해 타 업종과의 형평성 훼손과 다른 방향의 지원 확대 등으로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거나 다른 의견을 낸 것도 이번 진흥 발표가 여전히 표류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이번 진흥책에는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는 WHO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보건복지부와 민관협의체를 구성한다는 것 외에 적극적인 돌파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명확하게 도입하겠다는데, 문체부만 '해결방안 모색'이라며 간접적인 수단만 나열하는 식으로 한 발 뺀 모양새다.
속절없이 게임이 질병화되고 그에 대한 메가톤 급 게임 규제와 사업 축소가 예상되는 현재, 문체부가 이렇게 소극적인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업계의 분석이 나온다.
그나마 이번 발표의 성과라면 "앞으로 규제를 마음껏 집어넣겠다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에 '게임진흥법' 이름을 '게임법'으로 바꾸려다 다시 원복한 것 정도다.
게임업계에는 유명한 말이 있다. "아무 것도 안하는 정부가 게임업계를 도와주는 정부다."라는 말. 근 20년간 정부가 게임업계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줬으면, 오죽하면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때문에 이제 정부에서 계획만 그럴듯하게 발표하고 진흥하겠다고 외쳐봐야 게임업계의 반응은 냉소적일수 밖에 없다.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진흥 계획은 더 이상 게임업계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연계될 수 있고, 실패했을때 누군가 책임을 지고 다시 새롭게 추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진흥 정책이 나와야할 때다. 이미 국내 게임사들은 엄청난 위기에 몰려있다.
"실제 진흥이 되어야 진흥이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 말을 찬찬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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