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진료로 국내 발생률 증가… 무증상 성인, 검사 안받아도 돼
전절제술-반절제술 예후 좋지만 부갑상샘기능저하증 부작용 생기기도
현대의학으로도 완벽히 해결되지 않는 암은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두려운 존재다. 의료 이용자 입장에서 정기적인 검진은 암의 예방과 조기 발견,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하다. 초음파 검진 기술이 도입된 2000년대 초부터 발병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암이 된 갑상샘암의 경우 적극적인 검진이 암의 조기 발견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
갑상샘암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국내 암 발생률 순위에서 1위 암이었다. 2015년과 2016년에 3위로, 2017년에 4위로 떨어졌다. 수치상으로는 2015년 이후 갑상샘암 환자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갑상샘암 발생의 기형적인 증가가 과잉 진단 때문이라는 논란이 일면서 갑상샘암 검진과 진단 자체가 줄어 생긴 변화다.
국내 갑상샘암 발생률은 폭발적인 검진이 줄면서 감소하고 있지만 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갑상샘암 발생률이 미국은 10만 명당 13.3명인 것에 비해 한국은 미국의 약 4배인 51.1명을 기록했다.
초음파 검진 기술 발달로 ‘과다검진 암’ 등극
전문가들은 첨단 영상진단 기기의 보급과 건강검진의 활성화가 갑상샘암의 기형적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입을 모은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1999년 3325명이었던 국내 갑상샘암 환자가 2013년에는 4만2541명으로 늘었다. 2000년대 초 초음파 검진이 도입되고 개인 건강검진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술이 필요 없는 작은 크기의 갑상샘암까지 검진 대상이 된 것이다.
정부의 의료시스템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윤희숙 교수는 2012년 ‘일차의료 측면에서 본 의료정책의 방향’ 보고서에서 “갑상샘암이나 척추 수술 등 일부 시술이 급증하는 이상 현상에도 이를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정책 인프라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의료 서비스 정책 당국이 어떤 경우에 조직 검사를 시행하고 어떤 크기의 종양을 수술하는지 등을 파악해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4년에는 “무증상에는 초음파 검사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갑상샘암 과다 저지를 위한 의사 연대’가 출범하면서 갑상샘암 진단에 대한 우려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5년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가 무증상 성인에 대해 갑상샘암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검진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갑상샘암 검진에 제동을 걸었다. 의사와 환자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갑상샘암 검진 여부를 고려하자 검진과 갑상샘암 발생률은 감소했다.
초음파 검진, 갑상샘암 사망에 영향 없다
국내 갑상샘암의 5년 생존율은 100.1%에 달한다. 해당 기간 암이 생긴 환자의 5년간 실제 생존율을 같은 연령·성별 일반인의 5년 기대 생존율과 비교했을 때 갑상샘암에 걸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율이 높은 셈이다.
갑상샘암의 발병률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 년간 증가했지만 사망률은 발병률의 급격한 증가에 비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발생률과 사망률 사이의 차이는 대다수의 갑상샘암이 예후가 좋은 유두암이기 때문이다. 갑상샘암은 유두암, 여포상암, 허들세포암, 역형성암, 수질암 등으로 구분되는데 전체 갑상샘암의 97%가량이 천천히 자라고 치료가 잘 되는 유두암이다.
최근에는 초음파 검진이 갑상샘암으로 인한 사망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무증상 성인의 경우 갑상샘암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에 힘을 싣고 있다. 전재관 국립암센터 암관리학과 교수(예방의학 전문의)와 정규원 대외협력실장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초음파검사를 이용한 갑상샘암 수검 여부가 갑상샘암으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갑상샘암 초음파 검진은 일반인이 치료 가능한 시기에 진단받고 예방하는 것이 목적인데 무증상 성인이 초음파 촬영으로 갑상샘암을 진단할 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수술 줄면 부작용인 부갑상샘기능저하증도 줄어
갑상샘암을 진단받으면 세부 암의 종류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수술이나 추적 관찰이 고려된다. 전 세계 치료 가이드라인이 되는 미국갑상샘학회는 2015년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암 크기 4cm까지도 갑상샘의 절반만 절제하는 반절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크기가 1∼4cm인 경우는 암종이나 위치, 전이 등 환자의 상태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술하라는 것이다.
갑상샘암 수술은 대부분의 암종에서 예후가 좋지만 부갑상샘기능저하증, 우울증, 성대마비 등 수술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 가천대 길병원 이시훈(내분비내과)·이준협(갑상샘클리닉) 교수와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안성복 교수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갑상샘암 진단율이 줄어들면서 갑상샘암 수술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히는 부갑상샘기능저하증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인구 10만 명당 2.6명이던 부갑상샘기능저하증 환자 수가 2012년 7명으로 급증했다가 2016년 3.3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을 갑상샘암의 과잉진료와 과잉치료의 피해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다.
이시훈 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은 혈관 폐색을 일으키고 삶의 질을 매우 떨어뜨리는 질환”이라며 “갑상샘암 발생률이 감소하면서 갑상샘 절제술을 받는 인구도 줄고 그에 따라 부갑상샘기능저하증 환자도 감소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전 국민 대상 빅데이터 연구로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부갑상샘은 갑상샘 바로 뒤에 붙어있는 기관으로 부갑상샘호르몬을 분비해 혈액 속 칼슘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갑상샘 절제 수술 시 부갑상샘이 손상되거나 제거되면 기능이 떨어지는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이 발생한다. 이 경우 저칼슘혈증으로 뼈와 신장 기능에 이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는 평생 고용량 칼슘제와 비타민D를 복용해야 한다. 이 밖에도 갑상샘 전절제술을 하면 평생 갑상샘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고 반절제술의 경우에도 갑상샘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갑상샘호르몬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
우울증도 갑상샘암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후유증 중 하나다. 왼쪽 갑상샘에 유두암이 발견돼 전절제술을 받은 30대 초반 직장인 박정은(가명·여) 씨는 갑상샘호르몬약 복용 중단 후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향후 재발이나 전이를 막기 위해 방사성동위원소 치료를 결정하면서 갑상샘호르몬 약을 중단하고 저요오드식을 하면서 생긴 변화다. 약을 중단한지 2주 만에 체중이 5kg가량 증가하기도 했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일상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갑상샘암 수술 후 박 씨와 같은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이비인후과 정만기, 내분비대사내과 김선욱, 사회의학교실 신명희)이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과 함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토대로 갑상샘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100명 중 9명은 우울증에 빠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예후가 좋은 갑상샘암 수술이라 하더라도 부작용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와 감정적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도 뒤따를 수 있으므로 갑상샘암 종류와 크기 등 환자의 상태와 상황을 고려해 수술과 추적 관찰을 신중히 판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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