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씨(38)는 불면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 씨와 상담을 하다가 그가 게임이용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고민에 빠졌다. 이 씨는 컴퓨터를 이용해 24시간 자동으로 게임을 돌리고 여분의 스마트폰을 구해 게임을 항상 켜놓는다. 본인 말에 따르면 실제로 게임을 하는 시간은 4시간에 불과하다. 이 씨는 얼마 전 ‘현피’(온라인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 일)를 하려다가 법적인 분쟁으로 번지는 일도 있었다. 문제가 계속 발생하니 게임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러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이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모 씨(45).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과도하게 돈을 쓴다. 일주일 전에도 아이템을 구입하는 데 3000만 원을 지불했다가 청구서를 본 아내와 갈등을 겪고 있다.
‘게임중독’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면서 집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 다운로드 수와 매출액이 크게 늘었다.
작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했다. 국내에서는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두고 민·관 협의체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중독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싫어했던 부모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중독 치료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우선 의사들은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보다는 ‘게임이용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중독은 이미 일어난 결과에 집중하는 반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중독으로 이어진 이유와 과정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이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많은 것은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정확한 원인과 결과가 있어야 질환이다.
WHO가 발표한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은 3가지다. △게임을 스스로 멈출 수 없을 만큼 조절력을 상실했다 △다른 일상 활동보다 게임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부정적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과몰입한다 등이다. 개인과 가족, 직업적 능력, 일상생활, 대인관계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고 같은 패턴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게임이용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통제능력의 상실 여부’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부모와 마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거나, 성적 저하 등 현실 세상이 힘든 아이들 중에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갖은 이유를 들어 게임을 하려고 한다. 작은 스트레스나 문제도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만든다. 다양한 대처나 긍정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음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에 몰두해 버린다.
게임 사업으로 얻는 이익이 많지만 손실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스스로 ‘중독’ 인정하는 게 치료의 시작▼
게임이용장애가 의심되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중독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중독성을 인정하고 ‘그만해야지’라고 생각한 환자도 치료가 어렵다. 하물며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한 환자의 치료는 더욱 힘들다.
게임이용장애 치료는 중독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게임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환자의 취약점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 등의 요인이 작용했다면 병행치료가 필요하다.
충동조절 장애, 주의력 결핍 장애 등은 도파민이 부족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게임을 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게임, 술, 도박 등 중독에 취약한 이유다. 이런 경우는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그 밖에 삶의 긍정적인 부분을 상기시켜주는 동기 강화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등을 병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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