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나쁜 날씨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0일 03시 00분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결혼식이나 야유회를 앞두고 있다면 그날 비가 오지 않기를 누구나 바란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두 손 모아 기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날씨를 좌우하는 능력자라도 있다면 그를 찾아가 맑은 날씨를 주문하는 비즈니스가 생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수많은 신사 중에 맑은 날씨를 위해 특화된 기상신사(氣象神社)가 있다. 도쿄의 고엔지(高圓寺) 전철역 부근에 위치한 이 신사는 중요한 날에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는 일본인들이 찾는 곳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이자 동명의 소설인 ‘날씨의 아이’에서도 고엔지 기상신사가 등장한다.

‘날씨의 아이’에서는 간절히 기도하면 날씨가 맑아지는 능력을 가진 ‘맑음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남자 주인공인 가출 소년 호다카는 맑음 소녀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한다. ‘맑은 날씨를 전해드립니다’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고객들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신청서에는 맑은 날씨를 바라는 희망 날짜, 맑기를 바라는 장소, 맑은 날씨를 바라는 이유 등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는 맑은 날씨가 사람들의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절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호다카는 돈벌이를 위해 날씨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맑음 소녀인 ‘히나’는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맑은 날씨를 만들었어요”라고 말한다. 맑음 소녀의 착한 마음이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이지만 기상신사의 무녀가 말하듯이 자연을 좌우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날씨가 항상 좋으면 땅은 사막이 된다는 스페인 속담처럼 때로는 악천후도 유익할 때가 있다. 개별 장소에서 각기 달리 나타나는 날씨도 전지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균형을 이루는 현상이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의 말대로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입장에서 날씨를 바꾸려고 한다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고 결국 모두가 불행하게 될 수 있다.

‘날씨의 아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3개월째 비가 내려 도쿄가 수몰되는 재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가이아의 균형’이 파괴됐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책임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에 의해 이미 망가진 기후체계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욕심 때문에 또다시 자연의 균형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려는 듯하다.

도쿄 대부분이 물에 잠긴 것을 두고 ‘후미’라는 노파가 호다카에게 말한다. “도쿄 이 부근은 원래 바다였단다. 불과 얼마 전인 에도 시대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간 것뿐이야.” 기후변화조차도 유구한 시간의 흐름에서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이 무사하겠는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호다카는 맑음 소녀에게 외친다. “히나 씨, 우리는 아무리 비에 젖더라도, 우리는 살아간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괜찮을 거야.”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날씨의 아이#기상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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