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A 씨(33·여)는 최근 한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불면증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납품업체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5월 초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이 터진 뒤로는 손님도 많이 줄었다. 늘어가는 빚에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게 된 것이다.
대구에 사는 B 씨(67·여)도 지난달 한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렸다. 독실한 교인인 B 씨는 코로나19 사태로 교회 예배와 모임에 나가기 힘들어졌다. 다른 사회 활동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남편과 단둘이 사는 B 씨는 의사에게 “요즘은 서럽고 슬프고 세상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놨다. B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코로나19 사태가 6개월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 환자가 많아진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4월 의원급의 과목별 진료비를 산출한 결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는 54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82억 원에 비해 12.9% 늘었다. 이 기간 다른 과목 진료비가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4월은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던 때다. 이 기간엔 감염에 대한 우려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줄던 시기다. 올 4월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25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83억 원에 비해 67.3%, 이비인후과는 1390억 원에서 756억 원으로 45.6% 감소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성종호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코로나19로 해외 수출길이 끊긴 한 사업체 50대 대표가 얼마 전 우울증으로 처음 병원에 왔었다”며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증상을 보여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장기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로움이나 불안감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다고 전문의들은 전했다. 대구경북 환자들을 진료해온 장성만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교회, 동호회 등 사회 활동이 위축되면서 ‘우울하다’는 사람들이 병원을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대구의 한 상담센터 직원은 “감염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에도 손을 수십 번씩 씻거나 종일 비닐장갑을 끼고 다닌다는 불안·강박장애를 호소하는 사례도 늘었다”고 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제·사회적 문제로 인한 우울, 불안·강박장애가 심해지면 사회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는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7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 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건강관리비를 지원하고 심리치료 등을 제공하는 내용의 감염병예방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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